송재윤의 슬픈 중국

보편가치, 사법독립...중국에서 절대 말하면 안될 7가지

bindol 2021. 7. 16. 10:10

보편가치, 사법독립...중국에서 절대 말하면 안될 7가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자유롭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겠노라!” 1989년 6월 4일 군대가 투입돼 해산하기까지 7주간 진행됐던 톈안먼 민주화 투쟁 당시의 한 장면. 사진/ Catherine Henriette/AFP>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34회>

 

“칠불강(七不講).” 오늘날 중국에서 “절대로 논해선 안 되는 일곱가지” 금지된 주제를 이른다. 보편가치, 언론자유, 시민사회, 시민의 권리,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과오, 권력층 자산계급, 사법독립 등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은 1971년 10월 25일 유엔에 가입한 이래 줄곧 유엔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누려왔다. 유엔 상임이사국이 유엔의 헌장에 명시된 자유, 인권 등 인류의 “보편가치”를 논하지 말라며 인민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다.

유엔 헌장 뿐만 아니라 중국의 헌법도 자유, 민주, 인권, 법치를 공공연히 선양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중국 전역에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12가지를 써붙이고 “부강, 민주, 문명, 화해” “자유, 평등, 공정, 법치” 등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중국의 헌법은 자유, 인권, 법치를 “보편가치”로 내걸고 있는데, 중국공산당은 대체 어떻게 “보편가치”를 논하지 말라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나? 일당 독재의 자기모순이자 인민독재의 이율배반이다.

<중국에서 대학 및 전문학교 교사들에 내린 “칠불강.”/ BBC 중문웹>

독재에 항거하는 대륙의 자유인들

중국공산당의 탄압 때문에 다수가 침묵하고 있지만, 영리한 중국의 지식인들이 보편가치를 억압하는 중국공산당의 불합리와 비논리를 모를 리 없다. 2013년 5월 중공중앙이 하달한 “칠불강”의 내부문건을 전 세계에 폭로한 장본인은 상하이 화둥(華東) 정법대학의 장쉐중(張雪忠, 1976- ) 교수였다.

2013년 당시 중국 지식계에선 중국 헌법의 이론적 모순과 수정방안을 둘러싼 “헌정” 논쟁이 한창이었다. 중국 국내외의 저명한 법학자, 철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들이 “헌정” 논쟁을 벌였다. 1920-30년대 출생한 원로 지식인들의 참여가 두드려졌다. 1958년 반우파운동 때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뚜광(杜光, 1928) 선생은 “일체의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는 중국헌법 총강 제2항과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강조하는 중국 헌법 서언의 모순을 지적했다. 아울러 헌법 총강 제1조에 명시된 “인민민주독재는 중국의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중국 헌법 자체의 논리적 모순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댔다.

<2012년 홍콩 신세계 출판사에서 펴낸 뚜광 선생의 저서 “민주로의 회귀” 표지. 뚜광 선생은 중국 헌정 개혁의 방안으로 크게 “경제 시장화, 정치민주화, 문화 자유화, 사회 평등화” 등 네 가지의 테제를 제시한다. 중공정부는 출판 정지를 요구했으나 뚜광 선생은 굴하지 않았다.>

세계 중국학의 석학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위잉쓰(1930- ) 교수 역시 헌정 논쟁에 참여했다. 2013년 8월 절묘한 시기에 발표된 “민주와 민족주의 사이”라는 시평에서 위잉쓰 교수는 민국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 1866-1925)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내재하는 “민족”과 “민권”(民權, 곧 민주) 사이의 긴장에 착목해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제기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경우 “국민국가”의 형성이 곧 민주주의의 발판이 되었지만, 오늘날 중국은 “민족국가”의 이념이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전형적인 독일 제3제국의 전체주의를 답습하고 있다는 예리한 비판이었다. 위잉쓰 교수의 통찰에 의하면,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서구의 과학과 민주를 수용하는 열린 이성의 “사법서방(師法西方, 서방을 배우고 본받음)” 정신으로 충만해 있었는데, 오늘날 중국의 민족주의는 폐쇄적인 반(反)서방주의(anti-Westernism)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그 즈음 칠불강을 폭로한 장쉐중 교수도 헌정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특히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과오를 거론조차 말라는 칠불강의 제 5항을 조롱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1949년 10월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을 이끌고 중국에 레닌-스탈린 방식의 독재체제를 건립했다. 대규모의 폭력과 전방위적 공포를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는 이 체제는 무지몽매한 반인류적 특성을 보여준다.”

<2013-16년 당시 중국의 헌정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하고 유가 전통의 긍정적 가치를 포용하는 새로운 헌정적, 민주적 비전을 제시한 위잉쓰(余英時, 1930- ) 교수. 1930년 중국 톈진 출생으로 20대 홍콩을 거쳐 도미, 이후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교수를 역임했다./ 사진: dwnews.com>

중국공산당의 이념 공세와 정치 탄압

2013년 헌정 논쟁에 위협을 느낀 중공정부는 중앙 당교(黨校)의 이데올로그들을 풀어 마르크스-레닌이즘과 마오쩌둥 사상에 입각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은 근대 입헌주의가 자산가 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라 정의한 후, 서구식 “헌정”의 칭송은 곧 “반혁명”의 일탈이라 부르짖었다.

전형적인 “중화민족주의”의 관방 이론가들은 “헌정”을 외치는 지식분자들을 서구추종자들이며, 외국산만 선호하는 “나라이주의(拿來主義, ‘가져와’ 주의, 루쉰의 용어)”로 몰아부쳤다. 결국 자유, 인권, 법치, 권력분립 등의 가치는 중국을 파괴하는 서구적 음모라는 정도의 반격이었는데,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이론적 한계와 국수주의적 자폐성이 드러났을 뿐이었다.

 

논리의 허술함 때문이었을까? 중국공산당은 곧이어 자유 지식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장쉐중 교수는 상하이 둥화 정법대학에서 파면 조치를 당했고, 2019년엔 법률가의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2014년 10월 이후 중공정부는 위잉쓰 교수의 저작을 금서 목록에 올려 놓고 있다.

지식인 장쉐충, 자유와 인권 담은 미래 중국의 헌법 제시

놀랍게도 장쉐중 교수는 지금도 법적, 정치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인 2020년 5월, 그는 중공중앙의 거수기로 전락한 전국 인민대표대회 앞으로 공개서한을 보내 미래 중국을 위한 “중화통일공화국”의 헌법 초안을 제시했다. 그의 헌법 초안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으며, 자유, 평등, 인권, 법치라는 인류의 보편가치를 헌정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2019년 인권운동가와 인권변호사를 옹호한 혐의로 법률사의 자격을 박탈당한 장쉐중 전 화둥 정법대학 교수/ 사진: Kim Kyung-hoon/ Reuters>

중국공산당과의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장셰충 교수를 그저 돈키호테형 아웃라이어(outlier)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현재의 상황에서 그의 투쟁은 일개 지식분자의 고립된 몸부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바로 오늘날 중국에는 장 교수의 투쟁을 지지하는 헌법학자들, 인권운동가 및 비판적 지식인들이 중공정부의 삼엄한 감시와 탄압에 맞서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이징대 법과대학의 장첸판(張千帆, 1964- ) 교수와 칭화(淸華)대 법과대학의 쉬장룬(許章輪, 1962- )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입헌주의의 논리에 정통한 헌법학자들이며 사법적 훈련을 거친 중국 최고의 법률가들이다. 장치판 교수는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중국내 이른바 “헌정 민주(constitutional democracy)”의 담론을 이끌고 있는데, 2019년 중공정부는 그의 저서 ‘헌법학 도론(導論)’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를 비판하고 중국 실정에 맞는 “헌정 민주”의 실현을 주장하는 중국의 대표적 헌법학자 전 칭화대 법과대학 쉬장룬 교수/ 사진 twitter>

역시 근대 입헌주의의 전통 위에서 중국의 정치사상을 아우르는 대표적 헌법학자 쉬장룬 교수는 2018년 시진핑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는 예리한 시평으로 일대의 파장을 일으켜 2019년부터 출국 금지된 상태다. 2020년 2월 쉬교수는 코로나 사태의 발발에 대한 중공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론을 발표했다. 2020년 7월 6일 그는 베이징의 자택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처해졌고, 곧 이어 칭화대에서 해고된 상태다.

지식인 차이샤 “시진핑은 검은 세력 우두머리, 공산당은 인류의 공적”

2020년 9월 12일,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차이샤(蔡霞, 1952- ) 전(前)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의 교수는 중국의 현실에 맞는 “헌정 민주”를 실현하기 위해선 “거습(去習), 비공(非共), 변혁, 화평”의 네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거습”이란 “시진핑의 제거”를 의미하며, “비공”이란 공산당에 대한 전면적 부정을 의미한다. 차이샤 교수는 시진핑을 “흑방(黑幇, 검은 세력)의 두목”이라 비판하면서 “중국공산당”을 “인류의 공적,” “정치적 강시(僵尸)”라고 폄하했다.

 

 

 

 

 

 

 

 

<2020년 9월 12일 차이샤 교수는 “헌정 민주”의 실현을 위해 시진핑 퇴진, 공산당 부정, 변혁, 화평의 네 단계를 제시했다./ https://www.rfi.fr/cn/>

문혁 시절 “흑방”은 지주, 부농, 자산가, 반혁명분자, 수정주의자 등 비판·투쟁의 대상으로 지목됐던 이른바 계급 적인(敵人)을 부르는 단죄의 단어였다. 다름 아닌 국가주석 류샤오치가 홍위병 집회에서 “흑방의 우두머리”로 비판당했다. 1967년 여름, “차이샤”는 열다섯 살, “시진핑”은 열네 살의 홍위병들이었다.

2020년 9월 30일 중공정부는 차이 교수의 당적을 박탈한 후, 흡사 문혁 때처럼 전국의 당교 조직망을 통해 대비판을 개시했는데······. 화교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다수의 중국 네티즌들은 차이 교수의 편을 들고 있었다. 50-60년대 부친이 지방 군대의 간부를 역임해서 차이 교수는 고위 간부의 자식에 해당하는 소위 “홍이대(紅二代)” 중 한 명이었다. 중국공산당을 “인류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시주석을 “흑방의 우두머리”이라 부름으로써 차이 교수는 이미 당을 버리고 선을 넘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홍이대의 자유 투쟁이 개시되었다. <계속>

#송재윤의 슬픈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