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인간이 아니다, 죽여도 돼” 젊은층에 증오 심어주자 500만 학살

bindol 2021. 7. 16. 10:19

“인간이 아니다, 죽여도 돼” 젊은층에 증오 심어주자 500만 학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문혁 당시 중앙문혁소조는 계급 적인에 대한 무장 투쟁을 고취했다. 10대의 청소년들이 총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위의 사진은 당시 무장투쟁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공공부문>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33회>

 

얼마 전 한국의 한 유명작가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150-160만의 친일파를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5년 해방 당시 15세 소년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면 만 90세의 노인이다. 해방 전 20-30대의 적극적 친일분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이미 100세-110세의 고령이다. 결국 이 주장은 연좌제 소급입법으로 “친일파”의 자손들은 모조리 “친일파”로 몰아 단죄하자는 위헌적, 시대착오적, 반문명적 발상이다.

주중대사를 역임했던 청와대 비서실장은 방역의 명분으로 특정 집회 참석자들을 “살인자”라 불렀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정부의 방역 지침에 항의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벌어졌다. 그에 앞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선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다. 정치성향에 따라 이 두 시위에 대해선 찬반과 호오가 갈릴 수밖에 없다. 다만 독일이나 미국에서 중앙행정부의 핵심인물이 방역을 핑계로 시위 군중을 “살인자”라 칭했다면, 당장 직위를 박탈당하고 집단소송에 휘말릴 수밖에 없으리라.

문혁 시기 중국의 집단학살을 이해하기 위해선 위의 두 사건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혁명 시기 집단학살의 희생자 대부분은 오로지 출신성분 때문에 학살당했으며, 문화계 권위자들과 집권세력의 핵심인물들이 공적 매체를 통해 집단학살의 논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계급적 증오로 무장하고 학살 벌여

문화혁명 기간 내내 중앙문혁소조와 관영매체는 날마다 반복적으로 특정집단을 악마로 몰아가는 선동선전에 몰두했다. 우귀사신(牛鬼蛇神), 독초(毒草), 정치천민, 반혁명세력, 반동집단, 우경분자 등등 무시무시한 폭력의 구호가 중국의 전역에서 도심의 고층빌딩, 산간벽지의 토담까지 나붙었다. 꼭두새벽부터 농촌 마을 곳곳에선 커다란 확성기를 타고 “조반유리, 혁명무죄,” “계급투쟁, 권력탈취”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당시의 정치구호들은 들춰볼수록 섬뜩하지만, 그 당시 평범한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1949년 “해방” 이후 부단히 이어지는 정치운동의 연속일 뿐이었다. “해방” 이전부터 중공정부는 쉴 새 없이 정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18년 동안 중국의 “라오바이싱”(老百姓, 평범한 사람들)들은 일상적으로 정부 주도의 캠페인에 동원됐다. 정치집회에 참여한 인민은 “비판과 자아비판”을 통해 계급의식을 고취했다.

계급의식이란 결국 적대세력을 향한 계급적 증오심을 이른다. 문혁이 일어났을 때 특히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은 계급적 증오심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후난성 다오현의 집단학살을 고발한 “혈의 신화”의 저자 탄허청(譚合成)은 말한다. “[지주, 부농과 그 자식들은] 인간 이하로 취급됐기 때문에 [상부의] 명령이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다.”

장시간 중공정부의 선전선동 결과 당시의 중국 인민들은 계급천민의 제거를 당위로 받아들였고, 그 때문에 군중조직, 지방정부 및 지방군대가 결탁해 암세포 도려내듯 특정집단의 학살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흑오류 계급 적인에 대한 농촌 마을의 비투 장면/ 공공부문>

‘암세포' 인민의 적 도려내야...학살의 정당화

장이머우(張藝謀, 1951- ) 감독의 명작 “인생”(活着)의 주인공 푸구이(富貴)는 해방 직전 전 재산을 도박으로 날렸기에 운 좋게도 빈농이 돼서 계급학살을 모면했다. 만약 그가 집안 재산을 도박으로 날리지 않고 중공 정부에 고스란히 몰수당했다면, 그는 해방 직후 처형당하고 처자식은 가까스로 연명하다 문혁 시기 몰살당했을 수 있다. 원작가 위화(余華, 1960)가 고발하는 출신성분 신분제의 웃지 못할 패러독스다.

1949년 당시 중공정부는 전 인구를 도시거주민과 농촌거주민으로 양분한 후 다시 근로계급, 착취계급 및 기타로 분류했다. 전체인구의 76.8%가 빈하중농(貧下中農)으로, 4.5% 정도가 지주, 부농, 자산가 등 착취계급으로 분류됐다. 마오쩌둥이 직접 조어(助語)한 “빈하중농”의 범주엔 빈민, “부유하지 못한” 하층 중농이 속했다. 결국 중국 농촌거주민의 대다수가 빈하중농이었다. 요컨대 근로대중과 기타에 속하는 전체 인구의 95.5%는 “인민(人民)”이며, 착취계급에 속하는 4.5%는 적인(敵人), 곧 인민의 적으로 분류되었다. 바로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마오쩌둥이 틈만 나면 5%의 반혁명세력을 운운했다. 문제는 바로 그 5%의 착취계급이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송재윤

계급구분은 1949년 해방 직전 호주(戶主)의 출신성분에 따라 결정됐다. 삼대(三代)가 같은 집에 사는 경우, 가장인 조부(祖父)가 지주로 분류되면 그 아래 식솔들은 줄줄이 지주의 낙인을 받게 됐다. 해방 이전 지주, 부호라 해봐야 빈한한 농촌에 거주하는 중소지주에 불과했다. 만주 지역의 경우 당대에 맨손으로 땅으로 개간한 개척농민들이 다수였다. 결국 해방 이전 좀 넉넉했다는 이유 때문에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숙청되는 야만적 계급 보복이었다.

홍콩대학의 디퀘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계급 적인”으로 처형된 인구는 최소 500만 이상이다. 가장이 지주로 몰려 처형된 후에도 그 집안의 자손들은 지주, 부농, 흑오류(黑五類), 사류(四類), 계급천민, 적인(敵人)의 멍에를 쓰고 살아야만 했다. 1979년에야 중공중앙은 “지주”와 “부농” 등 출신성분에 따른 정치적 신분 구분을 영구 폐기했다. 출신성분 때문에 이미 수백만 명이 학살당한 후였다.

1950년대 ‘인민의 적'이라며 최소 500만명 처형

오늘날 중국의 각 지방정부는 전근대 중화제국의 전통을 이어서 지방의 역사, 문화, 현황을 담은 지방지(地方志)를 편찬한다. 2010년 현재까지 중국 각지의 지방정부는 도합 2213개 시(市)와 현의 지방지를 출간돼 있다. 이 지방지들엔 문화혁명 당시 집단학살이 소략하게나마 기록돼 있다. 광시성에의 단 두 사례만 살펴보면······.

1967년 10월 3일, 삼강(三江) 공사에서 민병(民兵) 영장(營長) 황톈후이(黃天輝)가 부대원을 이끌고 학살을 개시했다. 그들은 대대(大隊)에 속한 과거의 지주, 부농 및 그 자식들 76명을 끌고 가서 뱀 모양의 골짜기 절벽에서 밀어서 추락시켰다. 7월부터 10월까지 같은 현의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및 불량분자 등 사류(四類) 집단의 850명을 총살했다. (광시 취안저우현지[全州縣志] 발췌)

‘청리계급대오(淸理階級隊伍)’와 ‘군중독재’의 이름으로 현의 전 지역에서 무차별 학살이 발생했다. 1968년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1991명을 “암살단,” “반공애국단,” “흑방” 세력으로 몰아서 학살됐다. 그들 중엔 간부 326명, 노동자 79명, 학생 53명, 보통 도시거주자 689명, 농민 547명, 사류(四類)분자 및 그 자녀 918명이 있었다. (광시 린구이현지 [臨桂縣志] 발췌)

<문혁 당시 반혁명분자에 대한 농촌 마을의 비투 장면. 어린 아이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뒤의 음향장비는 간첩활동의 증거물로 압수된 듯. 문혁 이후 정부 조사에 의해 간첩 사건은 대부분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공공부문>

물론 이러한 지방지의 기록은 억압의 틈새를 뚫고 툭 삐져나온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989년 톈안먼 대학살 이후 중공정부는 더욱더 삼엄하게 문혁 집단학살의 기록을 봉폐(封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지에 산일된 파편적인 학살의 실상은 철저한 현장취재 및 질적 조사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을 뿐이다. 앞으로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는 중국 내 소수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계속>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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