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로 조리돌림, 재판 전에 인격살해...광풍은 계속된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1983년-1986년 중국의 “옌다(嚴打) 운동” 과정에서 공판 대회에 끌려가는 범죄혐의자들의 모습. 이들은 공판 대회에서 사형을 언도 받으면 바로 그날 처형장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중국 인터넷>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55회>
지금 이 세상에선 과연 피의자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나? 법 앞의 평등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존중되고 있나? 무죄추정의 원칙은? 죄형 법정주의는? 허위선동, 악성루머, 가짜뉴스에 조리돌림 당하고 포승줄에 꽁꽁 묶여 검찰의 포토라인에 섰던 그 수많은 피의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왜 재판을 받기도 전에 그토록 가혹한 인격살해의 형벌을 당해야만 했나? 어떻게 국가 기관과 공적 매체가 그토록 야만적인 집단린치를 주동할 수 있나? 문화혁명은 50년 전 중국의 흘러간 레퍼토리가 아니다. 바로 지금 문혁의 광풍은 “에코 챔버(echo chamber)”에 갇혀 있는 네티즌의 “폐쇄 회로”를 타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어둠을 쓸어버리고 악을 제거하라” 소흑제악 운동
“소흑제악(掃黑除惡, 사오헤이추어).” 오늘날 중국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네 글자 표어다. 직역하면 “어둠을 쓸어버리고 악을 제거하라!”란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실은 암흑세력의 강력범죄를 소탕하라는 의미다.
2018년 1월 24일 중공중앙 및 국무원은 당내에 통지문을 발송해서 “소흑제악(掃黑除惡) 전항(專項) 투쟁”을 발의했다. 여기서 “전항 투쟁”이란 암흑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한 특수한, 전문적인, 체계적인 투쟁을 의미한다. 불과 열흘 후 (2018년 2월 5일), 최고인민법원, 최고 인민검찰원, 공안부는 “암흑세력의 위법 범죄를 법에 의거해 엄하고 매섭게 타격하기 위한 통보”를 발표했다. 그리하여 중국 전역에서 2018년 1월부터 또 한 번의 “옌다(嚴打, 엄타)” 운동이 일어났다.
<“어둠을 쓸어버리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큰 주먹을 날린다! 완전히 승리하지 못하면 철수하지 않으리!” 2019년 중국 한 도시에 내걸린 “소흑제악 운동”의 표어/ 중국인터넷>
공안, 검찰, 법원이 삼두마차처럼 긴밀하게 협응(協應)하는 전통은 문혁 시절의 “공검법 군관위”(공안, 검찰, 법원 군사관제 위원회)를 떠올리게 한다. “옌다(엄타)”란 “형사범죄 활동을 엄격하고도 매섭게 타격하라!”는 구호에서 나왔다. 최초의 “옌다 운동”은 1983년 9월부터 3년 5개월에 걸쳐 중국 전역에서 전개됐던 대규모의 치안(治安) 운동이었다.
공안, 검찰, 법원이 삼두마차처럼 긴밀하게 협응
문혁 이후 사회 개혁개방이 추진될 때 중공 정부는 사회혼란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강력 범죄와의 전쟁을 추진했다. 19만 7000여 개의 각종 범죄단체를 소탕해서 177만여 명을 체포하고, 그중 2만4000명을 사형(死刑)에, 32만1000명을 도형(徒刑, 노동교양형)에 처했다. 개혁개방의 깃발을 들고 경제개혁을 추진할 때, 덩샤오핑 정부가 치렀던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실제로 “옌다 운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인민해방군의 내부조직을 개편해서 무장경찰부대를 창설한 후, 특수훈련을 통해 강력범죄를 제압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당, 정, 군의 모든 기관이 동시에 움직이고, 또 사형 판결의 권한을 현 단위 지방정부의 인민법원과 현 단위 당위원회 영도에 부여했다. 강력범죄 사범뿐만 아니라 문혁 시절 사인방에 동조하는 반혁명세력에 “엄하고도 매서운 타격”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후 중공중앙은 1996년, 2001년, 2010년 계속해서 각 시대적 조건에 따라 새로운 “옌다 운동”을 벌였다. 2018년부터 새로 시작된 “소흑제악” 운동 역시도 검은 세력을 소탕하는 “옌다 운동”의 레토릭(rhetoric)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1980년대 공판대회에 압송당해 가는 범죄혐의자들의 모습/ 중국인터넷>
반혁명분자 소탕하는 광장의 인민재판 ‘공포공판대회'
중국식 “옌다 운동”의 뿌리는 1950년대부터 중공중앙이 지속적으로 전개했던 수많은 정치운동으로 소급된다. 1950-60년대는 계급 적인(敵人), 반혁명분자를 소탕하는 정치운동이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전개되는 옌다 운동은 총기 범죄, 마약범죄, 강력범죄, 부패범죄 등을 일소하기 위한 치안 운동이란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인민”과 “인민의 적”을 양분해서 암적인 흑류(黑類, 검은 무리)의 일소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처형(處刑)의 방식과 논리가 놀랍도록 유사하다.
단적인 일례로 1980년대 “옌다 운동”부터 지속적으로 거행된 수많은 “공포공판(公捕公判)” 대회를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선 오늘날도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서 범죄혐의자를 단죄하는 “공포공판 대회”가 거행된다. 공포란 공개적인 체포를, 공판은 공개적인 형벌의 판결 및 선포를 의미한다. 광장의 군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범죄혐의자의 범죄행위를 심사한다는 점에서 “공심(公審) 대회”라고도 불리며, 판결의 선언에 초점을 둬서 “선판(宣判) 대회”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자. 2020년 6월 28일,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중국 전역이 어수선하던 시기, 광시(廣西)성 허츠(河池)시 둥란(東蘭)현 인민정부는 경기장에 운집한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공포공판 대회를 개최했다. 재판을 담당하는 인민법원의 재판관과 공안부의 요원들은 경기장 관중석에 설치된 단상에 앉아 마스크를 끼고 공판을 구경하는 군중을 면하고 있다. 범죄혐의자들은 운동장 맨 앞에서 1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데, 모두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2020년 6월 28일, 광시(廣西)성 허츠(河池)시 둥란(東蘭)현에서 주최한 공포공판대회/ http://www.donglan.gov.cn/>
둥란현은 “악에 물든 무리” 8개 단체 47명, 악한 세력 3개 범죄 집단의 37명을 모두 잡아서 11개의 사건에 연루된 도합 84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그동안 둥란현에서 기민하고도 철저하게 전개한 “소흑제악 운동”의 성과물이었다.
“침착, 정확, 맹렬하게 타격하라” 지속되는 문화혁명의 논리
지방정부 홈페이지의 선전문에 따르면, 둥란현의 “소흑제악 전항 운동”은 중앙정부, 광시성 자치구, 허츠시 위원회와의 통일적 연계 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전개됐다. 동란현의 “각 정법 기구는 단결 협력하고, 긴밀하게 배합하고,” “침착하고(穩), 정확하고(準), 맹렬하게(猂)”의 원칙을 견지하고 관철했다.” 그 결과 “빨리(快) 정찰하고, 빨리 파괴하고, 빨리 조사하고, 빨리 기소하고, 빨리 심사하고, 빨리 판결하여” 암흑세력을 소탕하는 “소흑제악” 운동의 목표를 달성했다.
“침착하고, 정확하고, 맹렬하게”의 원칙은 문혁 시절 반혁명분자를 처단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용어다. 반복되는 “빨리”의 구호는 1949년 건국 이래 중공중앙 특유의 강박관념이었다. 중국 사회에서 수천 개 지방정부의 선전 문구는 천 개의 강물에 비친 달처럼 중앙정부의 지침을 그대로 반영한다. 문혁은 46년 전 종료됐지만, 문혁시대의 “망텔리테(mentalités)”는 지금도 면면히 중국 전역에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근대 형법의 근간이 되는 “공개 재판”은 방청객 입회하에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판사는 냉철하게 법리를 심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반면 중국식의 공판대회는 범죄피의자의 유죄를 일방적으로 예단하여 “가두 행진시키고 군중에 보이는”(游街示衆)의 인민재판 인격살해에 가깝다.
1980년대 공판 대회의 현장 기록을 보면, 단상에 올린 범죄혐의자들의 목에는 커다란 플레카드가 걸렸다. 간수들은 혐의자들의 팔을 뒤로 당기고 뒷머리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했다. 또 판결을 기다릴 때 혐의자들은 단상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2001년 톈진에서 거행된 공판 대회를 밀착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공판대회 당일 새벽 4시 반부터 구치소엔 법관 및 공안요원이 결집했다. 새벽 6시 발목에 쇠고랑을 찬 죄수들을 차례차례 100여대의 차량에 태웠다. 7시 구치소를 출발한 차량은 공판대회가 거행되는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1만 명에 달하는 출근길 시민들이 차량에 실려 가는 죄수들을 구경했다. 8시 차량이 스타디움에 도착할 때 이미 군중이 모여들었다. 9시 대회가 판사가 대회의 시작을 선포했다. 그때부터 범죄혐의자의 구체적인 범행을 조목조목 열거한 후 형량을 선고했다. 매번 사형이 언도될 때마다 흥분한 군중은 크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판결의 선언이 모두 끝이 난 후, 죄수들은 곧바로 차량에 실려 형장으로 이송됐다. 사형의 선고에서 총살까지 몇 시간도 걸리지 않는 즉결처형이었다. “입즉집행(立卽執行)”의 명령 그대로였다.
공판대회의 인권침해와 위헌 논란
중국 각지의 지방정부에서 지금도 자행되는 공판대회의 합법성에 대해선 2010년대를 전후해서 중국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비판여론이 일었다. 장쑤성 인민법원 소속의 한 법률가는 2009년 모욕주기 식 공판대회가 중국헌법이 명시한 인권존중,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되며, 근대형법의 기초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파괴하며, 범죄 억제의 효과도 없다고 비판했다.
광저우(廣州) 대학 법학원의 저명한 법학자 셰후이(謝暉, 1964- ) 교수는 2011년 공판대회는 헌법적 근거도 없이 “권력이 법률을 지배하는 습관성 사실”일 뿐이며, 정부에 대한 인민의 불만을 범죄 집단에 돌리는 교묘한 통치 전술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이밖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공판대회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여전히 중국에선 공판대회가 열리고 있다.
<2010년 11월 1일 하이난(海南)도 산야(三亚)市 톈야(天涯)진에서 개최된 공포공판 대회의 장면. 200여명의 무장경찰과 공안 민경이 경호하는 이 대회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운동장 바닥에 앉아 있는 중고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현장에선 두 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고, 곧바로 처형장에 압송되어 총살당했다./ 중국 인터넷>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지금도 한 해 수천 건의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사형 집행 건수를 다 합해도 중국 한 나라의 사형 집행 건수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의 사형제도와 공판대회에 대해선 전근대 중국문화의 유습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중국공산당이 고안한 공포 통치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문혁 시기 공판대회와 즉결처형이 그런 해석의 설득력을 높여 준다.
중국현대사에서 공판 대회의 폭력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1970-72년 “일타삼반(一打三反) 운동이었다. 그 당시 수백만 명의 신상이 탈탈 털리고, 수십 만 명이 조사를 받고, 많게는 10-15만 “현행 반혁명분자”로 처형당했다.
누구든 반혁명분자의 낙인이 찍히면 구금 상태에서 가혹한 정신적·육체적 고문에 시달렸고, 강제자백으로 죄목이 확정되면 공판대회에 끌려 나가 형량을 선고받았다. 군중의 조롱과 규탄 속에서 사형을 언도받으면, 곧바로 처형장으로 압송됐다. 그렇게 희생된 일타삼반 운동의 희생자들 중 다수는 1980년대 재심사를 통해 무죄로 판명됐다. 이제 그 무고한 원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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