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윤인현의 한시(漢詩) 기행 (1) 자연인(自然人)이 된 도연명(陶淵明)

bindol 2021. 7. 25. 04:02

속세 단절 … 자연 순리 속 '인생 참뜻' 깨우치다


▲ 중국 강서성 구강현 도연명 기념관 내부에 있는 세묵지(洗墨池)이다. 곧 '붓을 씻은 연못'이라는 표지석이다.

왕래드문 마을 안식·풍류 삶 담아 … 석양 등 풍경도 표현
단풍·새·국화 가장 사랑 … '이치 순응·무욕' 무심 나타내

도잠(陶潛, 365~427)은, 자(字)가 연명(淵明)이고 호(號)가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벼슬이 낮아 시호가 따로 없다. 그래서 후세인들이 사시(私諡)인 '정절(靖節)'을 올렸다.

난세(亂世)인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宋:劉宋이라고도 함) 초기에 걸쳐 생존했던 인물이다.

당시 동진의 왕실은 세력이 약화되고 전국은 군웅이 할거하였으며, 그로인해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또한 한나라 때 국시(國是)로 삼았던 유학은 쇠퇴해지고 노장사상과 함께 도교와 불교의 염세주의가 만연하였다. 그런 시대에 살던 도연명이 자연 귀의를 통해 "나는 자연인이다"를 주장했던 것이다.

도연명은 '불위오두미절요(不爲五斗米折腰: 다섯 되 가량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고사(故事)로 유명한 인물로, 불의에 반감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귀거래사(歸去來辭)> 서(序)에는, 누이의 부음(訃音)으로 인해 귀향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귀향 후 53세 때 지은 작품을 감상해 보자.



<음주(飮酒) 제5수>(술을 마심)

도잠(陶潛)

초가집을 짓고 사람들이 사는 경내에 있지만,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수레나 말이 드나드는 시끄러움은 없다네.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마음이 부귀와 머니 땅도 저절로 치우쳐 있네.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고,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니.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산 경치는 해질 무렵에 더욱 좋고,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날던 새들도 서로 더불어 돌아오누나.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이 가운데 참 뜻이 있으니,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가리고자 하나 이미 말을 잊었다네.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집은 마을 속에 있지만 사람과의 왕래는 드물다. 마음이 세속적 삶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국화를 꺾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니, 산의 경치는 해질 무렵의 모습이 더욱 좋아 보이고, 황혼 무렵에 새들도 보금자리를 찾아 든다.

이 자연의 멋, 이 풍경 속에 천지조화의 진리가 있는데, 어느 것이 참뜻인줄 가리고자 하나 이미 말을 잊었다. 왜냐하면 자연의 순리 속에 인생의 참뜻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연명이 사랑한 것은 국화와 단풍, 그리고 나는 새들이다. 이 자연이야 말로 권력과 야망과 탐욕이 날뛰는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

현실적으로는 가난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곁에 있는 국화와 새와 산, 그리고 구름 혹은 가족, 나아가서는 지금의 삶을 지켜나가면서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도연명이 추구했던 '무심(無心)'의 경지의 표현인 것이다. 자연에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무욕의 경지를 작가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도연명이 지닌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이며, 참뜻인 것이다.

이처럼 도연명은 전대(前代)에 있었던 귀족적인 문학의 시대적 사조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참된 삶을 찾고자 했던 최초의 전원시(산수시) 시인이었다.

/인하대학교 교양교육원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