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24> 무한과 초한 ; 한계를 넘어

bindol 2021. 7. 28. 05:36

1 2 3 4 5 6…으로 이어지는 자연수와 짝수, 또는 홀수 중 무엇이 더 많을까? 당연히 자연수가 짝수나 홀수보다 두 배 많다. 틀렸다. 자연수의 개수와 0을 비롯해 -1 -2 -3…. 음수까지 포함한 정수 중 무엇이 더 많을까? 정수가 자연수보다 두 배 더 많다. 또 틀렸다. 자연수와 1/2 2/3 3/4…. 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 유리수 중 무엇이 더 많을까? 유리수가 더 많다. 또또 틀렸다. 1부터 무한대로 이어지는 자연수와 0과 1사이의 무리수 중 무엇이 더 많을까? 자연수가 더 많다. 또또또 틀렸다. 네 번 연속 틀렸으니 돌겠다.

실제로 이렇게 틀렸음을 증명하며 당시 수학자들마저 완전 꼭지돌게 만든 장본인이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다. 그는 무한히 이어지는 수라 하더라도 셀 수 있는 가산(可算) 집합 차원에서 자연수 집합과 홀수나 짝수의 집합이 서로 1:1 대응하니 개수가 같다고 했다. 자연수 집합과 정수의 집합도 서로 1:1 대응하니 개수가 같다고 했다. 자연수 집합과 유리수의 집합도 서로 1:1 대응하니 개수가 같다고 했다. 비가산 집합 차원에서 무리수를 포함한 실수는 자연수 정수 유리수보다 개수가 훨씬 많음을 증명했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는가? 부분 개수가 전체 개수와 같다니?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는 홀수나 짝수보다 두 배 많은 게 당연하다. 0을 기준으로 양수와 음수를 합친 정수보다도 두 배 많은 게 당연하다. 자연수 사이에는 더 많은 유리수가 더 있으니 유리수가 자연수보다 많은 게 당연하다. 무한히 이어지는 자연수가 0과 1사이의 무리수보다 많은 게 당연하다. 이에 칸토어는 그런 뻔한 당연함을 치밀한 논리의 망치로 개박살 묵사발냈다.

하지만 칸토어의 증명은 유한의 실제 세상이 아니라 무한의 집합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무한은 인간의 직관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학적 논리로 수용해야 한다. 무한에 그 어떤 수를 더해도 무한이며, 그 어떤 수를 곱해도 무한이며, 그 어떤 수를 제곱해도 무한이다. 1÷0=∞이란 계산 불가능한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무한수에는 연산의 의미가 없다. 방의 개수가 무한대 호텔에선 무한대 손님이 꽉차 있더라도 방을 무한히 늘려 새 손님들을 얼마든지 더 모실 수 있다.

아무리 무한한 집합의 세계에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칸토어 자신도 무한을 연구하다 신경쇠약 정신질환을 앓았다. 결국 인간은 절대적 무한을 알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신의 세계인 무한의 세계에선 천재 수학자라 하더라도 참임을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거짓임을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다. 수학자들조차 그러할진대 일반인들은 어찌 해야 하나? 그런 무한의 세계를 알더라도 쓸데와 영양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한의 세상에서 가끔 잠깐 사고 사색 사유하는 것도 정신건강상 나쁘지 않겠다. 그마저도 골치 아프다면 유한(有限)이니 무한(無限)이니 따지지 말자. 그저 한계를 넘어 초한(超限)하자. 나 자신 능력의 한계도 유한하니 무한하니 괘념치 말자. 그냥 한계를 잊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한계를 조용히 넘어(beyond) 섰을지 모른다. 물론 안넘어도 잘 살 수 있다. 무한히 괜찮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