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뭔 특이한 게 빵하고 크게(Big) 터졌다(Bang). 뭐가 터졌길래? 특이한 점이란다. 태초점이고 특이점이라 부르는 이유다. 도대체 무슨 점일까? 알 수 없다. 시간도 공간도 없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이며 면적과 부피는 제로에 가까운 점이란다. 10억 분의 1인 나노(nano)보다 훨씬 더 작은 10의 마이너스 몇 승인지 인간의 수학적 머리로도 도무지 계산이 안 되는…. 아주 아주 아주 작은 뭔가라는데…. 인간이 만든 낱말로 점이라 호칭할 뿐이다. 도대체 도무지 도저히 뭐가 뭔지 모른다. 태초(The beginning)의 요 특이점(singularity)을 요상한 요상점(pecularity)이나 가장 근원적 태원자(prime atom)라 불러도 되겠다.
과학적 머리로는 세상천지 우주가 처음에 빵하고 터지며 생겼다는 걸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니 빅뱅을 처음에 상상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상상의 세계를 업으로 삼는 문학자였다.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우주 진화에 관한 철학적 산문시에서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하여 갑자기 팽창한 다음에 정점 도달 후 다시 한 점으로 수축한다고 썼다. 100여 년 후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 1888~1925), 르메트르(Georges Lemaitre 1894~1966), 허블(Edwin Hubble 1889~1953), 가모프(George Gamov 1904~1968) 등 우주과학자들에 의해 정상 우주론과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빅뱅 우주론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528호 글에서의 펜지어스와 윌슨에 의해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됨에 따라 빅뱅 우주론의 증거가 밝혀졌다. 그래서 가설 아닌 정설 우주론이자 표준 우주모형이 되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면 팽창의 시작인 태초의 특이하며 요상했던 점이 있었을 테고 역시 우주가 팽창한다면 팽창의 종말도 있지 않을까? 빵하고 터지며 시작했던 우주는 역시 빵하고 터지며 종말을 맞이할 것같다. 부풀어 오르던 풍선이 끝내 터지며 쪼그라드는 것처럼…. 큰 수축(Big Crunch)이다. 수축 전 관측 가능한 가장 먼 우주는 400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단다. 그 안에 수많은 은하계들이 있고 각각 얼마나 많은 항성 행성 위성 혜성 혹성들이 있을까? 과학자들은 그 수를 기어코 계산해냈다. 사람이 두 맨 손으로 들 수 있는 모래알 개수는 약800만 개란다. 모든 해변과 사막 전체의 모래알 개수는 10의 22승인 100해 개라는데 이보다 7배 더 많은 700해 개란다.
그렇게나 크고 많은 우주가 한 점으로 수축한다면 다시 하나의 요상한 특이점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다지도 부글대고 이글대던 우주가 한 점으로 모였으니 역시 무한한 밀도와 온도를 지닌 한 점(太一)이 될 것같다. 그 점이 나중에 어느 순간 또 빅뱅하며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지 모른다. 그 태초의 한 점이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생명도 길이도 면적도 없는 텅빈 한 점이라면 불교에서의 공(空)과 비슷하다. 생명체가 생로병사 한다면 온우주는 공성팽축(空成膨縮)하겠다. 텅 빈(空) 한 점으로부터 원자들이 이루어지고(成) 우주가 부풀며(膨) 쪼그라드는(縮) 순환의 과정이다. 그 쪼그라든 태초점으로부터 또 어떤 생명체가 탄생하게 될까? 지금과 같은 인간은 생기지 않는다는 쪽에 한 표 건다. 아득히 요원한 이 따위 쓸데없는 생각을 가끔하면 마음 건강에 좋다. 속 좁게 쪼잔해지지 않는다. 폭 넓게 호쾌해진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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