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31> 팔각정과 팔전자; 8의 법칙

bindol 2021. 9. 14. 09:30

왜 정자는 팔각정이 많을까? 사각정과 육각정도 있지만 팔각정이 가장 안정되어 보인다. 왜일까?

①중국인들이 8을 좋아했기에 ②예수께서 팔복을 말씀하셨기에 ③부처께서 팔정도를 세우셨기에 ④주역에 팔괘가 있기에 ⑤사각의 모퉁이를 자른 팔각이기에. 정답은 ⑤번이기 쉽다. 사각은 모난 마음이다. 가장 이상적인 원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사각 모퉁이를 자르면 팔각이다. 그래서 정신수양 장소로서 굳이 팔각정을 지은 게 아닐까? 물론 8각 모퉁이를 깎으면 16각정이 되지만 그렇게까지 짓기는 힘들다. 그래서 여덟 개 각을 가진 팔각정이 가장 보편적으로 안정된 정자가 되었겠다.

인간세상에서 8이 안정된 숫자이듯이 원자세계에서도 그렇다.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후세에 남길 딱 한 마디를 이렇게 말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 이 한 마디를 더 남겨도 되겠다. “모든 물질은 전자로 돌아 간다.”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것 같았던 원자(Atom)를 더 나누면 아원자(亞原子)다. 물리학자들은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까지 포함하여 아원자를 17개까지 찾아냈다. 대단히 어렵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원자핵을 도는 전자, 요 세 가지 아원자만 알아도 된다. 여기서 전자가 8을 좋아한다. 여덟 개 전자가 되려 한다.

이에 원자번호 20번까지 중학교 과학 수준의 설명이 필요하다. 전자는 궤도를 돈다. 원자핵에서 멀어질수록 1주기, 2주기, 3주기… 궤도다. 태초의 원소인 수소와 헬륨은 제1주기에서만 각각 전자 1개, 2개가 돈다. 바로 전 530호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우주적 각별한 상황이다. 2주기부터 일반적 상황이 된다. 원자번호 20번까지 원소들에서는 전자가 한 궤도에 8개까지만 들어간다. 가장 바깥 껍질의 궤도를 도는 최외각(最外殼) 전자가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좌우한다. 어떤 원자의 최외각 전자가 1개, 2개, 3개면 이를 다른 원자에게 주어 바로 아래 궤도의 전자를 8개로 하는 게 편하다. 4개면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5개, 6개, 7개면 다른 원자로부터 각각 3개, 2개, 1개를 받아 8개로 하는 게 편하다. 8개면 가장 안정되어 있으니 주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

이렇듯 원자는 최외각 전자의 수가 8개가 되어야 안정된다. 이로 인해 원자들끼리 이온 결합이나 공유 결합이 일어난다. 그래서 소금(NaCl)이나 물(H2O)과 같은 분자들이 생겨난다. 그러니 모든 물질은 전자로 돌아간다.

원자번호 20번까지의 원소주기율표는 전자의 이런 8전자 법칙을 따른다. 이 주기율표를 멘델레프(Dmitri Mendeleev 1834~1907)가 만들었다지만 그 이치를 처음 발견한 학자가 뉴랜즈(John Newlands 1837~1898)다. 뉴랜즈의 옥타브 법칙이다. 화학이 음악이냐며 당시에 조롱받았지만 현대화학에서 옥텟 규칙이 되었으니 대발견이었다. 옥타브(octave)와 옥텟(octet)은 모두 8을 뜻한다. 최외각 전자에 의해 좌우되는 물질세상에서 옥텟 규칙을 위반하면 불안정해진다. 마찬가지로 ♪도레미파솔라시도♬ 여덟 음을 소리내야 안정된 기분이 든다. 아래 근음으로부터 완전8도 위 음까지 옥타브 안에서 음악세상이 이루어진다. 8괘 도상, 8각 정자, 8개 전자, 8개 음! 왠지 뭔가 교묘한 끈들이 얽혀 있는 듯하다. 신기하고 신비하며 경이롭고 경외롭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