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30> 음소와 원소 : 태초의 둘

bindol 2021. 9. 7. 04:21

500만 년 전! 유인원류에서 선행인류가 분화되었을 때다. 20만 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이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났을 때다. 어떻게 소통했을까? 지역마다 소리는 달랐겠지만 Yes or No 딱 두 마디로 통했을 것같다. 음 높이로 이를 나타냈을 수 있다. 낮은 음 긍정, 높은 음 부정 식으로. 그러다 딱 두 음으로 원시 음악을 했겠다. 동물들 소리는 대개 높낮이가 다른 두 음이다. 그렇게 언어와 음악은 하나에서 갈라진 두 음으로부터 출발했다. 가장 근원적인 태초의 두 음소(音素)다.

태초의 두 음소처럼 태초에 두 원자가 생겼다. 태초점인 특이점이 대폭발한 이후다. 온도가 낮아져 날씨가 추워지면 동물들도 서로 뭉치는 법이다. 대폭발 후 1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음전하 다운쿼크와 양전하 업쿼크가 뭉쳤다. 태초 음양의 조화로 양성자와 중성자가 생겼다. 빅뱅 후 3분이 지났을 때 온도가 수백만 도로 더 낮아져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가 합치게 되었다. 드디어 38만 년 후 온도가 약 2700도 정도로 떨어졌다. 드디어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가 뭉쳐 수소 원자, 양성자 2개와 전자 2개가 뭉쳐 헬륨 원자가 생겼다. 수소와 헬륨! 태초의 두 원자다.

태초의 음소가 낮은 음과 높은 음 두 개이듯이 태초의 원자도 두 개다. 양성자 1개인 수소와 양성자 2개인 헬륨이다. 5억 여 년이 지났을 때 온도가 더욱 떨어졌다. 흩어져 있던 두 원자들이 뭉쳐 별을 이루었다. 수억 년 후 무지하게 뜨거웠던 그 별들 안에서 수소와 헬륨을 이루던 양성자와 중성자 주위의 전자들이 헤쳐 모였다. 탄소나 산소, 철과 같은 원자들이 만들어졌다. 수십억 년 후 태양보다 더 큰 초신성 폭발 때는 금이나 우라늄과 같은 원자들이 만들어졌다. 결국 모든 원자들은 수소와 헬륨이라는 태초의 두 원자로부터 비롯됐다.

모든 물질은 원자라는 소(素)립자이자 미(微)립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뭉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물질을 이루는 알갱이들 종류가 원소다. 그래서 원자(原子) 주기율표가 아니라 원소(元素) 주기율표라 부른다. 이 표에서 맨 위층 1주기 원소에는 원자번호 1번 수소와 2번 헬륨만 있다. 빅뱅 후 38만 년 전에 생긴 수소와 헬륨은 수억 년 수십억 년 이후 생긴 원소들과 비교하여 격과 결이 다르니 차원이 다르다. 가장 질량이 작은 두 원소지만 우주 질량의 99%를 이루는 수소와 헬륨은 성질이 정반대다. 수소는 자기 전자 한 개를 주어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여 물(H2O)과 같은 분자를 이루는 힘이 가장 강하니 조화적이다. 반면에 헬륨은 자기 전자 두 개를 주지도 않고 다른 원소들로부터 받지 않으니 독자적이다.

온 우주에 질량비 3:1로 존재하는 수소와 헬륨은 항성(star)인 별의 주성분이다. 가령 태양이라는 항성에서도 수소 핵융합으로 헬륨이 된다. 이 때 질량이 줄어들며 그 줄어든 질량 만큼 에너지를 내며(E=mc2) 열과 빛을 방출한다. 덕분에 지구 생명체들이 여지껏 살아간다. 그 태초 두 원소들 덕분에 태초의 인류도 태어났다. 예-아니요 뜻의 두 음소를 표현하기 시작하며 여기까지 왔다. 둘이 만나면 파탄보다 조화를 이루는 힘이 강한 까닭이다. 0과 1, 너와 나, 둘도 대개 그렇다. 잘 살자.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