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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디지털 통행세’ 금지법

bindol 2021. 9. 2. 05:27

[만물상] ‘디지털 통행세’ 금지법

김홍수 논설위원

 

김홍수 논설위원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9.02 03:18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 후 ‘배 12척’뿐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살린 것은 통행세였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수군 재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로통행첩(海路通行帖)’이란 통행세를 거뒀다. 큰 배는 쌀 세 가마, 중간은 두 가마, 작은 배는 한 가마씩 거뒀는데 열흘 만에 1만석을 거뒀다는 기록이 있다. 이 통행세 덕분에 배 53척을 새로 짓고 수군을 2000명까지 늘릴 수 있었다.

▶서양에선 관세(關稅)로 진화한 통행세가 세계 문명사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했다. 15세기 중동 맹주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간 향신료 무역을 중개하면서 10% 이상 고율 관세를 매기자 유럽 각국은 오스만튀르크를 거치지 않는 새 무역로 개척에 나섰다. 바스코 다가마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며 세계 역사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갔다.

▶현대에 들어와 통행세는 부(富)의 축적 수단으로 진화한다. 영국의 록 그룹 비틀스는 엄청난 성공으로 떼돈을 벌자 세금이 고민거리가 됐다. 당시 영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이 90%나 됐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찾아낸 해법이 저작권 인세를 통행세처럼 거둬들이는 법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법인에서 배당받는 식으로 우회하면 세금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악덕 기업인이 납품 업체와 거래하면서 중간에 자신의 페이퍼컴퍼니를 거치도록 해 통행세를 챙기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구글, 애플 같은 IT 공룡 기업들이 통행세의 새 주체로 부상했다. 애플에 이어 구글까지 온라인 쇼핑몰, 영화·음악·웹툰 등 콘텐츠 사업자들이 스마트폰 앱(App)을 통해 올리는 매출에 대해 수수료 30%를 물리겠다고 나섰다. 국제사회에서 ‘앱 통행세’라는 비난이 들끓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구글의 과도한 통행세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구글은 전 세계 국가 95%에서 1위 검색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칭기즈칸, 공산주의, 에스페란토어가 모두 실패한 세계 지배에 성공했다”(뉴욕타임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독점 IT 공룡들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해법으로 스탠더드오일, 마이크로소프트를 강제로 쪼갠 미국식 기업 분할 해법, 별도 규제법을 만드는 유럽식 해법을 거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글 갑질 금지법’은 유럽식 해법에 가깝다. IT 업계에서 “구글이란 철옹성 댐에 균열을 가한 첫 타격”이란 평이 나온다. 다른 나라가 따라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