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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식빵언니’ 광고

bindol 2021. 8. 30. 06:30

[만물상] ‘식빵언니’ 광고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1.08.30 03:18

 

 

난생 처음 식빵을 맛본 게 중1 때다. 유신 이태 전이었는데, 지방 중소도시에 까까머리들의 도시락은 보리 혼식에다 깍두기·콩자반 같은 반찬이 대세였다. 물론 굶는 아이도 있었지만... 어느 날 시내 유명 음식점 아들이 책받침 절반 크기의 허연 빵에 잼을 발라먹는 걸 봤다. 신기했다. 1912년 미국 오토 로웨더라는 사람이 이미 식빵 자르는 기계를 발명해서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는 것도 그땐 알 턱이 없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요즘은 마트·제과점·편의점 어디든 흔하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바나나만큼 드물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는데 몇 년 전부터 다른 뜻으로 유행어가 됐다. 올림픽 신화의 주인공이자 월드클래스 배구 스타인 김연경 선수가 ‘식빵’이란 말을 세인 입에 오르내리게 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한일전 때 그녀가 초성 ‘ㅅㅂ’이 들어가는 자책성 일갈을 내뱉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식빵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뒤 식빵은 김 선수의 인기를 업고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다. ‘식빵언니’란 유튜브 채널은 어제 구독자가 136만이었다. 김 선수를 초청한 방송 프로그램은 으레 식빵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알아보는 김 선수의 국제적 별칭이 됐다. 처음엔 욕설 비슷하게 시작했으나 어느덧 스스로를 다잡고 용기를 북돋우는 감탄사 대접을 받는다.

 

▶엊그제 국내 굴지의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식빵언니’ 김 선수를 광고 모델로 전격 발탁했다. 욕설 이미지보다는 신화⋅불굴⋅용기⋅카리스마 같은 긍정 이미지를 노린 것 같다. 게다가 ‘식빵’이라니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김 선수는 최신형 휴대폰 모델로도 각광받던 차였다.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주연배우가 과격한 대사를 읊는 대목에 ‘식빵’을 외쳐서 마침 관람을 하던 김 선수가 “빵 터졌다”고도 한다.

 

▶로웨더의 발명이 워낙 혁신적이었던지 미국인은 지금도 좋은 아이디어를 칭찬할 때 ‘자른 식빵 이래로 가장 뛰어난’ 이란 표현을 쓴다. 그러나 ‘자른 식빵’은 2차 대전 중 미국서 판매 금지된 적도 있다. 포장 낭비 때문이다. 토스트나 샌드위치로 먹는 식빵은 목탄 데생 때 지우개로 쓰기도 했다. 곱창·삼겹살 구울 때 기름 흡수용으로도 좋다. 웰시코기 강아지는 몸매와 털 색깔이 닮았다 해서 식빵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근 시사평론가가 누군가를 질책하며 “식빵을 (먹인다)!”는 말을 쓰는 것도 봤다. ‘식빵’이 단순 욕설이었다가 정치적 비판 또는 용기와 외침을 뜻하는 말로 유행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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