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후베이(湖北)성 武漢(무한)에 가면 屈原(굴원)의 기념관이 있다. 전국시대 초나라를 살았던 굴원은 忠諫(충간)을 아끼지 않았던 충신이었다. 하지만 忠諫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인지라, 시기와 질투에 모함까지 당한 굴원은 양쯔 강의 지류인 汨羅(멱라)수에 몸을 던지고 만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충정을 기리고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날이면 물로 나가 머리를 감고 음식을 던져주고 뱃놀이를 했다는데, 이것이 端午의 유래이다.
端은 立과 (시초 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시초 단)은 소리부도 겸한다. 立은 땅 바닥(一)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정면으로 선(大·대) 모습이며, 이로부터 서다, 곧바르다 등의 뜻이 나왔다.
(시초 단)은 갑골문에서 윗부분은 식물의 싹을 아랫부분은 뿌리를 그렸는데 흙가루를 상징한 여러 점까지 더해 흙 속 깊이 뿌리를 내렸음을 표현했다. 그리하여 端은 식물이 처음 자라나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모든 사물의 始初(시초)나 端緖(단서)라는 뜻이 생겼다.
이후 소전체에 들면서 지금처럼 立이 더해졌는데, 그것은 식물이 처음 지면을 뚫고 자라날 때 곧추세운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端은 端正(단정)과 같이 ‘곧추 선 사람(立)의 곧바른(시초 단)’ 행동거지를 뜻하게 되었다. 秦(진)나라 때의 이체자에서는 立 대신 木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것은 나무(木) 그 자체가 곧게 자람의 상징이자 (시초 단)이 싹을 틔워 자라나는 식물의 모습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午는 갑골문에서 절굿공이의 모습을 그렸다. 午는 이후 간지자로 가차되었고, 그러자 원래의 절굿공이를 뜻할 때에는 다시 木을 더하여 杵로 분화했다.
지금은 음력 5월 5일을 端午라 하지만 당나라 때만 해도 달에 상관없이 초닷새를 ‘端午’라 불렀다. 예컨대 당나라 玄宗(현종)의 생일을 ‘仲秋月(중추월·8월) 端午’라고 한 것이 그 증명이다. 그것은 端이 처음을 뜻하고 午는 五(다섯 오)와 발음이 같아 端午가 ‘초닷새’를 뜻했기 때문이다. 이후 五가 중복되는 날이라고 重五(중오)라 했다가, 五와 발음이 같은 午를 사용해 重午라 불렀는데 이날이 端午가 되었다.
하 영 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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