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暴은 소전체에서만 해도 대단히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태양(日·일)이 나온(出·출) 모습에 두 손으로(공·공) 쌀(米·미)을 말리는 형상인데, 예서체로 들면서 아랫부분의 米가 水(물 수)로 잘못 변하고 나머지 자형들이 통합되어 지금처럼 되었다.
그래서 暴은 ‘볕에 곡식을 말리다’가 원래 뜻이다. 이로부터 暴露(폭로)와 같이 햇빛 아래 모든 것을 ‘드러내다’는 뜻이, 다시 暴壓(폭압)과 같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처럼 ‘강렬하다’는 뜻이 나왔다. 다만 暴惡(포악)과 같이 ‘사납다’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포’로 읽히는 데 주의해야 한다.
이후 暴의 ‘햇빛에 말리다’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日을 더한 曝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곡식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말리는 행위를 지칭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옛날에는 曝쇄日(포쇄일)이 있었는데, 장 속 깊숙이 간직해 놓았던 책을 가을 햇볕에 내다 놓고 바람을 쐬며 말리는 날이다.
한지로 만든 책인지라 장마철을 지나면서 좀이나 습기를 먹기도 쉽고 곰팡이도 쉬 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때가 되면 그간 비밀스레 숨겨 놓았던 ‘秘藏(비장)’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이라 책 구경이 큰 놀이거리가 되기도 했다. 더구나 대단한 장서가라면 평생 보기 힘든 책도 내놓는 경우가 있어 그러한 재미를 더해주곤 했다.
暴炎에는 瀑布浴(폭포욕)이 최고였던 탓일까? 暴에 水가 더해지면 瀑이 되는데,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듯(暴), 물(水)이 쏟아지는 모습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爆(터질 폭)은 불꽃(火·화)이 온 사방으로 퍼져 쏟아지는(暴) 것을 뜻한다.
炎은 갑골문에서부터 火가 두 개 겹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한자에서 같은 글자가 겹쳐져 만들어진 경우는 대부분 강렬함이나 많음을 나타낸다. 예컨대 森은 나무(木·목)가 빽빽함을, 品은 그릇(口·구)이 많음을, 3(무리 중·衆의 옛글자)은 사람(人·인)이 많음을, (염,혁)(불꽃 염)은 불이 활활 타는 모양을 나타낸다. 그래서 炎 또한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그렸다.
淡은 炎에 水(물 수)가 더해진 글자인데, 활활 타오르는 불(炎)에 불과 상극의 성질을 가지는 물(水)을 끼얹어 그 기세를 죽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淡은 炎과 대칭되는 의미를 가진다. 또 言(말씀 언)이 더해진 談은 會談(회담)에서와 같이 어떤 주제에 대하여 ‘말(言)을 활발하게 하는(炎)’ 모습을 고려하여 만든 글자로 보인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漢字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뿌리읽기]<87>강함(剛)과 부드러움(柔) (0) | 2021.09.15 |
---|---|
[한자 뿌리읽기]<86>온천(溫泉) (0) | 2021.09.15 |
[한자 뿌리읽기]<84>인색(吝嗇) (0) | 2021.09.15 |
[한자 뿌리읽기]<83>날카로움(利)과 빼어남(秀) (0) | 2021.09.15 |
[한자 뿌리읽기]<82>윤리(倫理) (0) | 2021.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