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있다. 겉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더없이 강하다는 뜻이다.
剛은 금문에서부터 刀(칼 도)와 岡으로 구성되었는데, 岡은 소리부도 겸한다. 刀는 칼의 모습을 그렸으며 강함의 상징이다. 또 岡은 山(뫼 산)과 망(그물 망)으로 이루어졌는데 산이 그물망처럼 이어진 산맥의 ‘산등성이’를 뜻한다. 돌이 드러난 산등성이의 이미지가 ‘강인함’으로 이어지듯 岡은 ‘강함’을 뜻한다. 그래서 綱은 그물을 버티는 강한(岡) 줄((멱,사)·멱)을, 鋼은 강한(岡) 쇠(金·금) 즉 강철을 말한다.
하지만 이후 岡의 자형에서 망의 형상을 잘 분별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山을 더한 崗을 쓰기도 하였다. 그래서 崗 역시 岡과 같은 뜻이며, 다시 이로부터 ‘산비탈’이나 산등성이 같은 곳에 세워진 ‘哨所(초소)’를 뜻하기도 하였다.
만리장성을 가 본 사람이라면 험준한 산등성이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長城(장성)의 모습을 쉽게 기억할 것이다. 그 長城을 따라 자로 잰 듯 정해진 간격마다 哨所가 세워졌고, 다시 몇 개의 초소마다 전진 초소가 만들어졌다. 초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언제나 步哨(보초)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곳이다. 그래서 崗에는 항상 지키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직장’이라는 뜻이 생겼다.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량의 실업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실직을 현대 중국어에서 ‘샤강(下崗)’이라 하는데, 자신이 지키던 직장(崗)에서 내려오다(下)라는 뜻이다.
柔는 소전체에서도 矛(창 모)와 木(나무 목)으로 구성되었다. 창(矛)의 나무자루(木)라는 뜻으로, 훌륭한 창은 창의 재질도 강해야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나무자루의 柔軟(유연)한 탄력성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그래서 柔는 ‘나무의 성질이 柔軟함’이 원래 뜻이고, 이로부터 부드러움이나 온화함의 뜻까지 생겼다. 蹂躪(유린)이라는 단어에 등장하는 蹂는 발(足·족)로 연약한(柔) 존재를 ‘짓밟다’라는 뜻이다.
강함은 부드러움에 대칭되는 말로 하나는 남성의 상징이요, 다른 하나는 여성의 상징이었다. 남성이 절대적 우위였던 시절, 老子(노자)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로 여성의 우위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더구나 겉과 속으로 이를 모두 갖춘 ‘外柔內剛’이라면 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 아닐는지.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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