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선택이란 다른 수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얼마 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보듯, 결단이 위기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결단에는 언제나 큰 責任이 따른다.
責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자와 貝(조개 패)로 이루어졌는데, 자는 소리부도 겸한다. 자는 원래 화살처럼 하늘로 솟은 나무(木·목) 모양에 양쪽으로 가시가 그려진 모습이며 이로써 ‘가시나무’를 형상화 했다. 그래서 자가 가로로 둘 합쳐진 棘(가시나무 극)은 탱자나무처럼 옆으로 우거져 자라는 가시나무의 특성을, 세로로 둘 합쳐진 棗(대추나무 조)는 하늘을 향해 높이 자라는 가시를 가진 키 큰 대추나무의 특성을 반영해 만든 글자다. 그리고 칼(刀·도)과 가시(자)의 속성이 합쳐진 刺(찌를 자)에서 보듯, 가시는 아픔과 어려움과 叱責(질책)의 상징이다.
貝는 조개를 그렸으며,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쓰였다. 그래서 責은 인간의 어려움 중 가장 힘든 것이 경제와 관련된 문제이며, 財貨(재화)와 관련된 이익에서 언제나 분란이 출현함을 보여주는 글자로, ‘대단히 품기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말한다.
任은 人(사람 인)과 壬으로 구성되었다. 壬은 갑골문에서 이미 간지자로만 쓰여 그것이 무엇을 그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날실(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 장착된 베틀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특히 금문(오른쪽 그림)에서는 중간에 점을 더해 베를 짤 때 날실 사이로 들락거리는 북(저·저)을 형상화함으로써, 이것이 베틀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베 짜기는 대단히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기에 한 사람이 責任을 지고 도맡아서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壬에 ‘맡다’는 뜻이 생겼고, 壬이 간지자로 가차되어 쓰이자 다시 人을 더해 任으로 원래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任은 어떤 일을 도맡아 책임지는 것을, 임은 베 짜듯 세심하게(壬) 음식(食·식)을 만드는 것을, 妊(아이 밸 임)은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하고 조심해야 할 때를 말한다.
따라서 責任이란 경제가 잘 풀리고 사회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머피의 법칙처럼 만사가 꼬여 더없이 복잡하고 어려워져 그것이 우리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責任은 아무나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任에서 보듯 베를 가장 잘 짤 수 있는 책임자에게 맡기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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