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이야기

[한자 뿌리읽기]<127>목욕(沐浴)

bindol 2021. 9. 16. 06:47

[동아일보]

‘설문해자’에는 ‘관리가 된 사람은 닷새째에는 쉬면서 沐浴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것은 서양 기독교 달력의 범례를 따르는 오늘날과는 달리 고대 중국에서 휴일은 곧 목욕하는 날(沐日·목일)이요, 목욕은 곧 휴식을 의미했다. 휴일을 沐日로 규정한 옛 습관은 우선 몸의 위생의 중요성을 알리고, 몸의 청결을 정신의 청결 즉 각성된 정신 상태나 修道(수도)와 연결시켜 사고했음을 보여준다.

沐浴의 沐과 浴에서 木(나무 목)과 谷은 각각 소리부와 의미부를 겸한다. 谷의 경우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윗부분은 물이 흐르는 모양을, 아랫부분은 샘의 입구(口·구)를 그려 산 속의 샘에서 물이 나와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이로부터 谷에 골짜기의 뜻이 생겼다. 골짜기는 노자의 표현처럼 텅 비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의 상징이다.

따라서 沐은 숲(木) 속의 물을, 浴은 계곡(谷)의 물을 형상화하여 沐이 머리를 감는 것을, 浴은 몸 전체를 씻는 것을 구분하여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인간의 씻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숲과 계곡에서 물을 벗 삼아 휴식을 즐기는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진 단어이다.

그것은 씻는 행위 자체를 강조한 다른 글자들과는 구별된다. 예컨대 沫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세숫대야(皿·명)를 앞에 놓고 얼굴을 씻는 모습을 그린 글자인데, 이후 水(물 수)와 末(끝 말)이 결합된 형성구조로 변했고, 의미도 세수할 때 비누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거품’으로 변했다. 또 洗는 물(水·수)에 발을 들여놓은(先·선) 모습으로부터 ‘발을 씻다’는 의미를 그려낸 글자이다.

다시 말하면 沐浴은 몸을 씻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옛 선비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정신수양을 하는 충전행위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그래서 休(쉴 휴)가 나무 옆에서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라면, 沐은 그 휴식의 倍加(배가)를 의미하고, 浴은 흐르는 계곡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고 정신을 수양하는 모습에 중점이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俗은 계곡(谷)에 여러 사람(人)이 모여 있음을 형상화한 글자로, 여러 사람이 계곡에 모여서 어울려 놀거나 봄이 시작될 때 계곡에 모여 목욕하던 옛날의 습속을 그렸다. 정신 수양을 위주로 생각하는 선비나 상류 계층의 목욕이 혼자 고독하게 이루어져야 하던 것과 대비되어 俗에는 대중의 풍속이나 습관이라는 뜻이, 다시 雅俗(아속)에서와 같이 ‘속되다’는 뜻이 생겼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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