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消는 水(물 수)와 肖로 이루어졌다. 소리부도 겸하는 肖는 전국문자(왼쪽 그림)에서 小(작을 소)와 肉(月·고기 육)으로 이루어져, 잘게 썰어 놓은 고깃덩어리를 말했다. 고기를 잘게 썰어 놓으면 고기의 종류에 관계없이 대체로 비슷해 보이며 구분이 힘들어진다. 이로부터 肖에는 ‘작다’는 뜻 이외에도 ‘닮다’는 의미가 나오게 되었다. 보통 不肖(불초)라고 하면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부모만큼 훌륭하게 닮지(肖) 못한(不) 못난이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肖에는 다시 어리석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생겼다.
消는 주로 얼음이 녹는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그 속에는 큰 덩치의 얼음이 작은(肖) 물(水)로 변하는 모습이 형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후 消는 消失(소실)이나 消滅(소멸) 등의 뜻이 생겼고, 이로부터 ‘다 써 버리다’라는 의미까지 생겼다.
이에 비해 銷는 금속(金·금)이 녹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큰 광석 덩어리가 녹아 작은(肖) 금속(金)으로 변하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또 削은 어떤 물건을 칼(刀·도)로 잘게 깎아내는 것을 말하며, 그러한 도구인 ‘창칼(書刀·서도)’을 말하기도 한다.
費는 소전체에서 貝(조개 패)와 弗로 이루어졌는데, 弗은 소리부도 겸한다. 貝는 조개 화폐를 뜻하고, 弗은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화살대 같은 물체를 실로 동여매어 놓은 모습을 그렸다. 제대로 펴지지 않아 화살로 쓸 수 없는 것을 실로 묶어 바로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弗의 원래 뜻은 바로잡다(矯正·교정)이며,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바르지 않다’는 뜻이 생겼고, 다시 부정사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消費의 ‘消’는 녹아 없어진다는 뜻을, ‘費’는 돈을 바르게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소비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었던 고대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글자라고 하겠다.
최근에 유행하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주장은 교환가치(돈)가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은 消費가 자본의 유통과 순환의 지배적 코드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 주는 주장이다. 하지만 잉여생산이 요즘과 같은 지위를 얻지 못했던 근대와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消費란 단지 자원의 낭비에 불과했고 결코 사회의 중심 가치로 떠오르지 못했기에, 소비가 부정적 개념으로 존재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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