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야, 날아와서 음식상에 모여라. 수북이 담은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놓았고,
술도 잘 익어 향기롭고 국수와 만두도 곁들였으니 어서 와서
너희들의 마른 목구멍을 적시고 너희들의 주린 창자를 채우라.
다산 정약용 시문집에 적힌 ‘파리를 조문하는 글’ 조승문(弔蠅文)의 한 대목이다.
유배지인 강진에서 굶어 죽는 백성들의 참상을 목격한 다산 선생은
지방관리들의 가렴주구를 더는 그냥 볼 수 없었다.
경오년 여름에 쉬파리가 말할 수 없이 들끓었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 났다고 약을 놓아 파리를 때려잡을 궁리를 했지만,
선생은 이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아. 이것은 결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분명 굶주려 죽은 백성들이 다시 태어난 몸이기 때문”이라며
위와 같은 글을 지어 파리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의 시체를 보니
언덕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데 옷도 걸치지 못한 채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맛비는 내리고 날은 더워지니 모두 이상한 것으로 변해서 꿈틀꿈틀 기어오르고,
어지러이 꾸물거렸다. 그러더니 옆구리에 넘치고 콧구멍에까지 가득 차게 됐다.
이러다가 허물을 벗고 나와 답답한 구더기의 탈을 벗어버리고 파리가 됐다.
“파리야, 날아서 고을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다시 태어나지도 말아라.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상태를 축하하라.
사람은 죽어도 내야 할 세금은 남아서 형제에게까지 미치게 되니,
유월이 되면 벌써 세금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걷어차는데 그 소리가
사자의 울음소리 같아 산악을 뒤흔든다. (…)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거라. 임금이 계신 대궐로 들어가서
너희들의 충정을 호소하고 너희들의 지극한 슬픔을 펼쳐 보여라.”
무더운 여름, 부패한 관리들의 가렴주구를 비판하고,
파리떼를 조문하는 다산 선생의 지극한 애민정신에 감복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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