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다. 이것은 났다(生)가 사라지는(滅) 법이다.
태어나고 죽는 생멸(生滅)이 없어진 자리에, 적멸(寂滅)은 그대로 즐거움이다.
‘열반경’ 4구게다. 어떻게 해야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사고(生死苦)를 고뇌하던 싯다르타는 ‘생멸(生滅)이 적멸(寂滅)’임을 깨닫고 적멸락(寂滅樂)을 얻어 붓다가 됐다. 적멸락은 생사의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바 열반 적정(寂靜)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사의 고통을 어떻게 여의는가? 그건 죽음이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죽음이 없다기보다 내가 죽는 일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죽을 내가 없다는 ‘무아(無我)’를 아는 일이다. 왜 내가 없는가? 인연이 합하면 불이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연기(緣起)에 의해 가합된 몸뚱이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몸뚱이는 무자성(無自性)으로 인연 따라 변한다. 얼음이 물인 것처럼 생멸이 적멸이다. 얼어도 물이고 녹아도 물이다. 생겨도 생긴 게 아니고 없어져도 없어진 게 아니다.
어느 날 설산동자가 만행을 다니던 중 ‘제행무상 시생멸법’의 게송을 듣고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후렴구를 기대하며 주위를 살폈으나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자는 그에게 후렴구를 간청했다. 나찰은 배가 고프다며 동자의 몸을 요구했다. 이에 응한 동자는 ‘생멸멸이 적멸위락’이라는 후렴구를 듣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나찰을 향해 몸을 던졌다. 순간 나찰은 제석천으로 변해 설산동자를 받아 안았다. 설산동자는 부처님의 전신(前身)이라고 ‘대열반경’은 기록하고 있다. ‘생멸멸이(生滅滅已)’란 생사를 좇는 미혹한 마음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대로 ‘적멸위락’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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