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bindol 2021. 10. 24. 04:08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천자문’의 첫 여덟 글자다.

‘천자문’을 지은 중국 양(梁)나라 문인 주흥사(周興嗣)는 무슨 일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을 앞두게 됐는데 그의 재주를 아까워한 황제가 “하룻밤 안에 1000자로 사언절구를 지으면 죄를 사해주겠다”고 하니 그가 하룻밤 사이에 4자 1구로 250구를 이뤄내니 날이 밝았고 그의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천지현황’은 ‘주역’ 곤(坤)괘에 연원을 둔다. 역의 이치는 ‘음변(陰變) 양화(陽化)’로 음이 다 자라면 양으로 변하고, 양이 극성(極盛)하면 음으로 화한다. 곤(坤)괘, 상6에 “용전우야(龍戰于野)하니 기혈(其血)이 현황(玄黃)이라”, 즉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다고 한 것은 곤괘 상6의 음은 다 자란 음이므로 음(女)이 극성하면 양(男)과 들에서 싸운다는 것이니 그 싸움으로 양은 검고 음은 누런 피를 흘린다(其血玄黃)는 것. 곧 남녀의 교합을 의미한다. ‘현(玄)’은 하늘의 색이요, ‘황(黃)’은 땅의 색으로(天地玄黃), 두 색을 합하면 푸른색(蒼)이 나오니, 천지의 교합으로 생긴 만물을 ‘창생(蒼生)’이라 일컬음도 여기에 기인한다. 하늘은 끝이 없어 시야에 가물가물하니 이를 검은빛으로(가물 현, 검을 현), 땅은 깊이 파고들어 가면 누런빛이 나오므로 황색으로 대표한다. 공자는 ‘곤문언(坤文言)’에서 “음이 양을 의심하면 반드시 싸우나니 그 양이 없음을 의심함이라. 그러므로 용이라 일컫고 오히려 그 동류를 떠나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혈이라 일컬으니 무릇 ‘현황’이라는 것은 ‘천지의 섞임(天地之雜也)’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니라”고 했다. 곤은 땅의 도, 처의 도, 신하의 도다. “곤은 이룸이 없되 이어서 마침을 둔다(無成而代有終也)”고 한 그 ‘유종의 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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