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등(雲騰)하야 치우(致雨)하고 노결(露結)하야 위상(爲霜)하니라.
구름이 올라 비가 되고, 이슬이 엉겨 서리가 된다. ‘천자문’의 아홉 번째 글귀다.
구름과 비 사이의 인과관계, 이슬과 서리의 차제(次第). 눈여겨보면 그 속에 천도의 역리(易理)가 숨어 있다. ‘천자문’에서 다섯 번째의 ‘한래서왕(寒來暑往)’에 이어 ‘추수동장(秋收冬藏) 윤여성세(閏餘成歲) 율려조양(律呂調陽)’, 그다음이 ‘운등치우’다.
오래전 서울 홍제동 화장터에서 피어나는 구름과 마주한 적이 있다. 동생을 잃고 바라보던 솜뭉치 같던 구름. 구름은 비가 돼 지상에 내려와 얼음이 되고, 얼음은 녹아 다시 수증기로 증발해 구름이 된다. 우리의 생사를 물과 얼음에 비유한 한산(寒山) 스님의 시구는 얼마나 또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가. 이는 질량과 에너지의 변화일 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것이다. 생멸하는 현상 속에 변치 않는 실재, 죽되 죽지 않는 그 한 물건(一者)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상강 무렵, 서리의 계절이다. ‘노결위상(露結爲霜)’ 이슬이 엉겨 서리가 된다. “이상(履霜)하면 견빙(堅氷)이 지(至)하나니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고 주역 곤(坤)괘 초육은 말한다. 곤괘는 여섯 효가 모두 음효로 초육은 맨 아래에 위치한다. 음이 처음 엉기는 것이 서리이니, 그것이 자라 장차 극성하게 될 것임을 경계한다.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은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나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임은 하루아침 하룻저녁의 연고가 아님이라. 그 말미암아 온 바가 점차(漸矣) 한 것이니 일찍 분별치 못한 때문이라”고. 그러니 견기이작(見幾而作)해, 그 미세한 기미(幾微)를 알아차리고 미리 대비하라고 ‘주역’은 귀띔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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