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

[한자로 읽는 고전]<21>고불고 고재고재(觚不觚 觚哉觚哉)

bindol 2021. 10. 31. 04:47

고: 술잔 고 不: 아니 불 觚 : 술잔 고
고: 술잔 고 哉: 어조사 재 觚 : 술잔 고 哉: 어조사 재

 

논어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말로 명실불부(名實不符·명분과 실제가 부합하지 않다)의 의미다. ‘고(고)’는 술 마실 때 쓰는 그릇의 일종으로 중간을 허리띠로 묶듯 가늘게 파고 위와 아래에 나팔 모양의 주둥이를 만든 그릇이다. 주희(朱熹) 역시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고’의 의미를 모서리 릉(’)자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혹자의 설에 따라 주기(酒器)란 의미 이외에 목간(木簡)의 의미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고는 ‘고재(觚哉)’의 의미를 ‘불득위고(不得爲고)’, 즉 ‘고가 되지 못한 것’의 의미로 풀이했다. ‘고’는 원래 방형(方形), 각형(角形)인데 이것의 모양이 변하여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했으니 그것이 어찌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다. 즉, 이 말은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한 ‘고’는 결코 ‘고’가 될 수 없다는 말로 정치도 마찬가지로 예의와 인의가 무너지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비판한 것이다. 하안(何晏)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서 “정치를 그 도(道)로써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고’의 의미를 ‘팔다’는 의미의 ‘고(沽)’의 가차자(假借字)로 보기도 하는 학자도 있는데, 리링(李零) 교수는 이 단락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푸념하고 나서 바로 ‘고哉고哉’의 의미를 ‘팔아야지! 팔아야지!’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가 자신을 좋은 값에 적당한 가격을 받고 팔고 싶다는 자조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원전의 의미를 너무 벗어난 해석이라고 본다.

결국 공자의 이 말은 그의 정명론(正名論)과 기본적인 맥락이 맞닿아 있다. 즉,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君君臣臣·군군신신)” 하는 것이 중요하며, 모든 사람이나 사물이 명분대로 움직이고 명분에 맞게 존재하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