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조용헌 살롱] [1320] 구례 용호정(龍湖亭)의 풍경

bindol 2021. 11. 1. 04:14

[조용헌 살롱] [1320] 구례 용호정(龍湖亭)의 풍경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A1%B0%EC%9A%A9%ED%97%8C%20%EC%82%B4%EB%A1%B1

 

www.chosun.com

입력 2021.11.01 00:00

 

마음에 때가 끼었다고 생각되거나, 마음이 구겨졌다고 느낄 때는 이걸 그대로 놔두지 말고 풀어야 한다. 이게 쌓이면 눈빛이 탁해지고, 얼굴이 어두워진다.

 

내가 푸는 방법은 풍경 좋은 데를 가서 둘러보고 걷는 일이다. 구례의 용두리에 있는 용호정도 그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30리를 내려온 지맥이 섬진강 앞에서 멈췄다. 용의 머리와 입이 섬진강으로 들어가기 직전이다. 그래서 용두리(龍頭里)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정자 앞으로는 섬진강이 돌아 나가고 앞으로는 오산(鰲山)이 서 있는 모습이다.

 

산 모습이 자라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례구역에서 바라다보면 자라가 내려와 섬진강의 물을 먹는 모습과 흡사하다. 움직이지 않는 산을 살아 있는 동물로 바꿔서 생각하면 대자연이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다가온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용호정에서 오산을 바라보면 그 모양이 선비가 머리에 쓰는 유관(儒冠)처럼 보인다. 대자연이 살아서 꿈틀거리면 여기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에너지를 얻는다. 산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돈, 출세, 성공 대신에 자연이 있구나! 용호정 주변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산죽들이 우거져 있다. 섬진강변을 따라서 조성된 이 숲속의 덱 길을 걸으면 머리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산골 마을의 서정이 느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날에 도선국사가 사도리(沙圖里)에서 풍수를 연마하다가, 용호정 앞의 섬진강을 건너서 오산 꼭대기의 사성암(四聖庵)으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한다. 용호정은 매천 황현(1855~1910)이 ‘難作人間識字人(살면서 식자층 노릇하기 힘들구나)’이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에 구례의 선비들이 매천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구례의 향토사학자 우두성(69)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까 매천은 원래 광양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례로 이사를 와서 산 이유는 선생 때문이라고 한다. 매천을 가르쳤던 스승이 구례 사람 천사(川社) 왕석보(王錫輔·1816~1868) 선생이다. 왕석보의 학문이 깊었다. 개성 왕씨인 왕석보에게 배우려고 매천은 구례에 와서 살았다. 알고 보니까 수백년 동안 구례의 터줏대감은 개성 왕씨들이었다. 만석꾼이 여러 명 나온 부자들이었다. 거기에다가 정유재란의 석주관(石柱關) 전투 때에도 왕씨들이 목숨과 재산을 바쳐 싸웠다. 의병들의 전투에 들어간 돈도 왕씨들이 대고 목숨도 댔다. 풍경 속에는 피의 역사도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