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손에 손 잡고
김태훈 논설위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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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1.02 03:18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떨쳐내고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기상을 찬미하는 듯한 노랫말에 우리 모두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렴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지금도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는 이 상당수가 ‘손에 손 잡고’를 역대 올림픽 주제곡 중 최고로 꼽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그룹 코리아나가 부르고 있다./조선일보 DB
▶당시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손에 손 잡고’였다. 밖으로는 북방 외교로 그때까지 적이었던 나라들과 손잡았다. 1988년 2월 미수교국으론 처음으로 헝가리 무용단이 방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고, 양국에 상주 대표부가 설치됐다. 이후 5년간 45국과 손을 잡아 친구가 됐다. 유엔 남북 동시 가입까지 이뤄졌다. 서울 올림픽은 두 번의 반쪽 올림픽 이후 첫 전 지구촌 올림픽이었다.
▶안으로는 국민 화합 정책이 펼쳐졌다. 그해 3월 정부는 ‘광주 사태’로 불리던 5·18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정지용 등 월북 문인 100여 명 작품도 해금했다. “전환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민주화와 과거 청산, 밖으로는 탈냉전 질서에 대응”(’노태우 시대의 재인식’·강원택 등 지음)했다는 평가 그대로였다.
▶'손에 손 잡고’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3저(저유가·저물가·저환율) 호황과 겹쳤다. 1986~1989년 한국 경제는 연평균 12.1%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2.5%까지 떨어지며 기업들은 항상 구인난이었다.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기업을 골라 취직했다. 그때쯤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해 1990년 1월 서울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 주말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래가 처음 울렸던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은 4400달러였다. 국민 80%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자부했다. 30년 만에 이 수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목을 부추겨 이득을 취하는 정치 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몇 해 전 방영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 제목이 ‘손에 손 잡고’였다. 올림픽 개막식 피켓걸 경험을 자랑으로 여기던 주인공 덕선은 30년 뒤 이렇게 회고했다. “가슴 뜨거웠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처럼 신나고 싶고, 비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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