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평화, 인내와 근면을 상징해온 소.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건 단지 긴장을 풀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생활에 더 강한 긴장을 불어넣고,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견고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는 이백(李白·701∼762)은 방랑과 자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이 나돌 정도다. 그처럼 분방하고 자유로운 기개가 그의 시를 만들어낸 원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성품은 간혹 단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학문을 닦는 데 방해가 됐다. 이백은 한동안 상이산에 들어가 공부했지만 오랫동안 계속하지는 못했다. 적막한 산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오랜 공부의 기간을 참아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이백은 중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산길을 내려가고자 했다. 그런데 시냇가 옆에서 한 노파가 무거운 쇠공이를 숫돌에 갈고 있었다. 이백이 의아해 “왜 쇠공이를 갈고 있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어이가 없던 이백은 “그게 말이나 되느냐”며 타박했다. 하지만 노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쉬지 않고 하다 보면 왜 안 되겠어?”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은 다시 산으로 발길을 돌렸고 공부에 열중했다. 마침내 ‘시선(詩仙)’이라 불릴 수 있는 학문적 토양을 완성했다. 공부를 그만두려는 이백과 쇠공이로 바늘을 만들려는 노파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백은 ‘언제까지 해야 되지?’라며 답답해했고 노파는 ‘언제까지라도 하면 되겠지’라며 인내했다. 본질적으로 이백은 느림을 참지 못했고, 노파는 느림을 인내할 수 있었다. 천천히 간다는 것, 하나씩 차근차근 밟고 나간다는 건 느림의 힘을 전제한다.
시대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건 인간 내면의 속도도 빨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의 모습과 삶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기대는 곧 현실에 대한 충실함과 견고함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설사 겉으로는 빨리 간다 해도, 결국 느림이 만들어낸 견고한 토대가 없으면 그 ‘압축 성장’은 기반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느림을 견디고 깊이, 넓게 집중하라.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기뻐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으면 쇠공이가 바늘이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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