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44] 힘 없으면 당한다
1912년 지브롤터 해협의 요충지 모로코에 대한 권리를 놓고 강대국들이 다툰 '아가디르 위기' 당시, 프랑스 군대가 숙영지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 /GoShow·위키피디아
19세기 말 조선은 강대국들의 놀이터이자 싸움터였다. 20세기 초 모로코도 그랬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북단 모로코는 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코를 맞대고 있어 늘 유럽의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한 나라가 차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해서 유럽 열강은 중립지대로 둘 것을 약속했다(1880년 마드리드협약). 그런데 스페인과 프랑스가 그 약속을 위반하고 야금야금 영향력을 넓혔다. 대신 영국과 밀약을 맺고 영국의 이집트 진출과 맞바꿨다. 갓 통일을 이룬 독일이 외톨이가 되었다. 독일 황제가 모로코를 직접 방문하여 모로코 주민들의 궐기를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독일의 자극은 몇 년 뒤에야 발동이 걸렸다. 마침내 모로코의 근대화를 요구하는 폭동이 발생했고, 그때 모로코의 술탄은 프랑스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독일도 군함을 파견했다. 카사블랑카 남쪽의 아가디르 항구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이 고조되었다(1911년 아가디르 위기).
그때 프랑스와 밀약을 맺은 러시아가 독일에서 투자금을 회수했다. 갑자기 금융 위기를 겪게 된 독일은 전쟁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윈스턴 처칠 영국 해군장관의 중재에 따라 군함을 철수시켰다. 체면상 콩고 북부 일부를 프랑스에서 넘겨받는 조건이었다. 110년 전 오늘이다. 며칠 뒤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로코에서 사이좋게 관할 구역을 나눴다. 독일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
아가디르 위기는 약소국 백성들의 궐기가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청일전쟁과 닮은꼴이다. 동학농민운동이 몰고 온 청일전쟁이 청나라 몰락의 변곡점이라면, 아가디르 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서곡이었다. 국제협약은 언제든지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다는 선례와 함께 유사시 한편이 될 수 있는 조합이 만들어졌다.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과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삼국동맹이다.
그때 일본은 대한제국의 화폐(구 한국은행권)를 수집해 소각하면서 옛날의 흔적들을 지웠다. 110년 전 이맘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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