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46] 양심이냐, 실리냐

bindol 2021. 11. 17. 04:54

[차현진의 돈과 세상] [46] 양심이냐, 실리냐

입력 2021.11.17 00:12

물류 대란의 징조는 지난 3월 말 수에즈운하 사고였다. 큰 배가 드러누워 폭 200미터 뱃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전 세계가 발을 굴렀다. 190킬로미터 운하를 건너는 데는 15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따라 1만킬로미터를 우회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 구상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 계속되다가 1869년 실현되었다. 프랑스 사업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10년 공사 끝에 성공했다. 수에즈운하가 개통되자 그는 더 큰 욕심을 냈다. 이번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를 뚫는 것이었다. 그때 드 레셉스는 이미 74세였다. 하지만, 수에즈운하보다는 길이가 절반도 안 되므로 금방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착각이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겪지 못했던 말라리아와 황열병, 그리고 긴 우기 앞에서 고전했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의 바닷물 높이가 달라 수압이 엄청 높다는 것도 큰 장애물이었다. 풍토병과 사고로 죽은 사람이 2만명을 넘었고, 공사는 계속 지연되었다. 드 레셉스는 결국 1889년 파산했다.

 

이후 파나마운하 사업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그것을 4000만달러라는 헐값에 사면서 영구 소유까지 꿈꿨다. 그런 야무진 계획에 콜롬비아가 동의하지 않자 운하 지역만 따로 떼어내서 파나마공화국으로 독립시켰다. 어리바리한 신생국에서 영구조차권, 치외법권, 군사작전권을 얻어냈다.

 

파나마공화국에는 군대가 없다. 그나마 운하까지 없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 그래서 파나마 정부는, 미국에 소유권 반환을 끝없이 졸랐다. 1977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마침내 운하 반환 협정에 서명했다. 국제법과 양심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공화당은 그것이 매국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결국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양심을 따르다 보면,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걸 각오해야 진짜 양심이다. 정치인들이 양심을 따를 때 국격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