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 명나라 '대명률'이 바탕

bindol 2021. 11. 3. 19:13

최근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가 영천 고경박물관에 있는 대명률 인쇄본 1권을 심의했어요. 위원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인쇄된 대명률의 원판본이 맞는다고 밝히고, 보물(★) 신청 대상으로 결정했지요. 고경박물관은 이것이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고요. 도대체 대명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기록물이기에 보물 신청에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것일까요?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 형법(★)을 담은 법규집이에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1367년부터 1397년까지 모두 네 차례 편찬 과정을 거쳐 완성했지요. 당나라 법률을 참고해 만들었는데 그 바탕은 유교 사상에 두고 있어요. 대명률을 만든 중국에는 1397년 판본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경박물관의 대명률 판본은 그보다 이른 1389년에 펴낸 것을 판각(★)해 인쇄한 것이라고 해요. 이처럼 고경박물관 판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명률 판본일 가능성이 높아 그 중요성과 가치가 높다는 것이고요.

 경북 고경박물관의 대명률 인쇄본이에요.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 법전이지요. /남강호 기자

 

대명률을 명나라에서 만들었고,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니 조선이 떠오르지요? 조선은 명나라와 가까이 지냈고 건국이념도 유교 사상을 따르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조선은 태조의 즉위 교서(★)에 '모든 공사(公私)의 범죄 판결은 대명률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발표하였으며, 형법에 관한 것들은 대체로 대명률에 따라 처리했어요. "대명률에 따라 죄인들에게 마땅한 형벌은 내리소서!" "이러면 안 된다는 법이 대명률 어디에라도 있단 말이오?" 등의 대사가 역사소설이나 사극에 종종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법전이 따로 없었을까요? 천만에요. 조선은 나라를 세우면서부터 법전 편찬 작업을 벌였어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사사로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을 시작으로, 태조는 '경제육전'을 펴냈어요. 태종은 '경제육전속전', 세종은 '신속육전'과 '신찬경제속육전'등을 편찬했지요. 그 뒤로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가 조선의 통치 기구와 제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종합 법전을 새로 만들게 하였어요. 그게 바로 '경국대전'이에요.

 경국대전은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으로 꼽히며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 역할을 했지요. /Getty Images/멀티비츠

세조는 육전상정소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해 당시까지의 법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후대에 길이 전할 법전을 만들게 하였어요. 그 결과 호전(★)과 형전(★)이 차례로 완성되었으나 세조 때 시행하지 못했고, 예종을 거쳐 성종 때에 이르러 법전이 완성되어 시행되었지요. 그 뒤로 사회·경제적 배경이 바뀜에 따라 영조 때 속대전, 정조 때 대전통편, 고종 때 대전회통 등의 법전이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경국대전이 조선을 다스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최고의 법전이었답니다. 대명률은 경국대전을 펴내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형법에 관한 법률의 바탕이 되었고요.

★보물: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가 지정한 유형문화재를 말함.

★형법: 국가 형벌권의 내용과 그 집행 방법 따위를 규정한 법률 체계. 어떤 행위가 처벌되고 그 처벌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규정.

★판각: 나뭇조각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김.

★교서: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는 명령서.

★호전(戶典): 조선시대 육전(六典) 가운데 호적·토지제도·조세 등 호조(戶曹)의 소관 사항을 규정한 법전.

★형전(刑典): 육전(六典) 가운데 법률·소송·형벌의 내용 등 형조(刑曹)의 소관 사항을 규정한 법전.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