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을 원작으로 삼아 만든 영화의 포스터예요. 원작은 단성사에서 처음 개봉되었지요.'필름 영화여 안녕! 마지막 현상소 문 닫는다'는 기사가 최근 눈길을 끌었어요. 필름 영사기(★)가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됐다는 내용이었지요.
필름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에 처음 상영된 때는 거의 100년 전이에요. 1919년 10월 27일, 서울의 '단성사'라는 극장에서 '의리적 구토'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지요. 당시 단성사 사장 박승필이 제작비를 대고 극단 대표 김도산이 감독·각본·주연을 맡았으며, 극단의 단원들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였지요.
'최초의 영사 활동극 상영'이라는 신문 기사와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단성사로 몰려들었어요. 당시 신문에선 상영 첫날 풍경을 이렇게 소개했지요. '초저녁부터 밀물처럼 밀려오는 남녀관객으로 단성사는 삽시간에 아래위층이 빽빽이 차서 관객을 더 받지 못하는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 영화의 입장료는 특등석 1원 50전, 1등석 1원, 2등석 60전이었어요. 당시 유행하던 신파극(★)에 비해 비싼 편이었어요. 하지만 극장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참고로 당시 설렁탕 1그릇의 가격이 10전이었다고 해요. 지금의 설렁탕 가격을 6000원이라고 하면, 그 영화의 특등석 가격은 9만원, 1등석은 6만원, 2등석은 3만6000원인 셈이에요. 1962년 한국영화인협회에서는 '의리적 구토'를 한국 최초의 영화로 보고, 이 영화의 첫 상영일인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정했어요. 이듬해인 1963년부터 이날을 영화의 날로 기념해오고 있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의리적 구토'는 100% 완전한 필름 영화가 아니라 연쇄극이라는 주장이에요. 연쇄극은 연극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장소나 장면을 영화로 찍어 연극 도중 무대 위 스크린에 상영하는 공연을 말해요. 이처럼 연극에 영화 장면이 끼여 한 편의 작품을 이룬 것이므로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에 더 가깝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최초의 영화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1923년 4월 9일 상영된 '월하의 맹서'를 한국 최초의 영화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답니다. 이 영화는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완전한 필름으로 만든 최초의 극영화(★)였다고 해요.
▲ 1950년대 단성사 모습이에요. 단성사는 한국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극장이에요.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지 7년 뒤인 1926년 10월 1일, 진정한 한국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되었어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지요. '월하의 맹서'와 '아리랑'은 인물의 대사, 음향 효과 등의 소리가 없이 영상만으로 된 무성(無聲)영화였어요. 다시 그로부터 9년 뒤인 1935년 10월 4일에 역시 단성사에서 한국 최초의 유성영화(★) '춘향전'이 개봉되어 한국 영화의 새 장을 열었지요. 그런데 이제 필름 영화가 사라진다고 하니 영화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네요.
★영사기: 필름에 새겨진 이미지를 확대해 연속적으로 은색의 커다란 막에 보여주는 기구.
★신파극: 세상 풍속을 소재로 한 통속적인 연극. 우리나라에선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 초기에는 개화계몽을 위한 연극 운동을 펼치다 가정 비극과 사극을 주된 소재로 삼음.
★극영화: 극적인 요소나 줄거리가 있는 모든 형태의 장편 영화.
★유성(有聲)영화: 화면과 함께 소리가 나오는 영화. 발성 영화라고도 함.
★격세지감(隔世之感): 오래지 않은 동안에 몰라보게 변하여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지호진 |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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