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학이 먼 하늘 바라보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가을바람에 대숲도 괴로워하는데, 온몸이 가득 가을 이슬에 젖었네.'
조선 선조 때 시인 이달이 쓴 '화학(畵鶴)'이라는 시예요. 이달은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관아에 속한 기생이어서 서얼(★) 신분이었어요. 그러나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떨쳤지요. 이달이 시를 얼마나 잘 지었느냐 하면, 그의 제자였던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이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도전적인 언행을 하여 당시 사람들 가운데 그를 증오하거나 질투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시에 대한 재주가 뛰어나 그의 불손한 행동을 감싸고도 남았다"고 표현했을 정도랍니다. 이달의 호는 '손곡(蓀谷)'인데, 강원도 원주의 '손곡'이라는 시골에 묻혀 살았기에 붙여진 호예요. 허균이 쓴 한문소설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손곡산인전'은 이달의 전기(★)를 소설 형태로 쓴 것이에요.
▲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있는 손곡 이달의 시비(詩碑)예요. /이병훈 기자
이달이 어느 날 친구 허봉의 집에 놀러 갔어요. 그때 허봉의 동생인 허균과 자리를 함께했는데 허균은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이달을 깔보듯 대했지요. 그러나 이달이 그 자리에서 지은 시를 보고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거만함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고 해요. 그때부터 허균은 누나인 허난설헌과 함께 이달에게 시를 배우는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당시 허균 같은 명문가의 후예가 서얼 신분인 스승의 전기를 쓰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어요. 그만큼 허균이 이달을 진정한 스승으로 여기며 존경했다는 뜻이지요. 허균은 훗날 흩어져 있던 이달의 글과 자신이 외운 시를 모아 '손곡집'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어요.
▲ ‘송하맹호도’는 김홍도와 강세황의 합작품으로 전해져요. 호랑이는 김홍도가, 소나무는 스승인 강세황이 그렸다고 해요. 오른쪽 그림은 김홍도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친 강세황의 자화상이에요. /한국저작권위원회·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또 다른 스승과 제자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로 이름 높은 강세황은 '단원기(檀園記)'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어요. '옛날이든 오늘이든 대부분의 화가가 한두 가지만 잘 그리고, 여러 가지를 다 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김홍도는 인물, 산수, 신선, 부처, 꽃, 과일, 새와 동물, 벌레, 물고기, 게 등 못 그리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절묘한 작품이라 그를 뛰어넘을 화가가 없다.''단원기'는 강세황이 제자였던 단원 김홍도에 대해 쓴 글이에요. 김홍도의 작품과 성품,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았지요.
김홍도는 1745년 지금의 경기도 안산에서 중인(中人)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와 한동네에 살던 강세황은 어린 김홍도를 제자로 삼아 그림과 글을 가르쳤다고 해요. 김홍도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그를 도화서 화원으로 추천하였고요. 그 덕분에 김홍도는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지요. 이달이나 강세황처럼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허균, 허난설헌, 김홍도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한 것 아닐까요? 스승의날인 오늘, 이달과 허균, 강세황과 김홍도의 이야기를 통해 스승의 은혜와 제자의 도리를 되새겨봐요.
[1분 상식] '중인(中人)'은 어떤 신분이었나요?
조선시대의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의 신분 계층이에요. 조선 초기부터 형성되어 조선 후기에 하나의 독립된 신분층을 이루었지요. 기술관이나 의원, 역관, 관청에서 하급 관리를 맡은 서리나 아전 등이 바로 중인층에 해당해요. 서얼도 대과 응시가 금지되고 양반층에 속하지 못했으며, 중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서얼(庶孼):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자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기(傳記): 개인의 일생을 사적 중심으로 기술한 글.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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