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굶주린 백성 생각하며 밤새워 '米(쌀 미)' 쓴 태종

bindol 2021. 11. 4. 04:18

 태종은 가뭄으로 굶주리는 백성이 늘자 이를 자기 탓으로 여겨 양위를 결심했다고 해요. /덕원군파종회 홈페이지

최근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어요. 우리나라가 10년 만에 다시 쌀 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WTO(세계무역기구)와 10년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을 매년 2만t씩 늘리기로 약속했어요. 그 약속 기간이 올해 끝나기 때문에 오는 9월까지 내년부터 쌀 시장을 개방할 것인지를 WTO에 통보해야 한대요.

우리 정부는 의무 수입량을 더 늘려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미루면 오히려 피해가 커져 이번에 전면 개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일부 농민 단체 등은 전면 개방은 안 된다고 주장하지요.

쌀은 우리 민족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해 온 곡식이에요. 쌀로 지은 밥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주식(★)이 되었어요. 쌀은 한자로 '米(미)'라고 쓰는데, 우리 조상은 '米'자를 쪼개어 '팔십팔(八十八)'이라는 벼농사 원칙을 만들었대요. '볍씨를 뿌리고 그것이 밥이 되어 사람 입에 들어가기까지 농부의 손을 88번 거쳐야 한다'는 뜻이에요.

'쌀 미' 하면 떠오르는 역사 속 인물도 있어요. 바로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이에요. 태종이 왕위를 세종에게 넘겨주기 전 일입니다. 나라에 가뭄이 계속되자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백성이 늘고, 쌀 한 됫박 때문에 형제가 싸우다가 죽는 사건까지 벌어졌어요.

 최근 쌀 시장 전면 개방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어요. 사진은 지난 3일 열린 쌀 시장 전면 개방 반대 기자회견 모습이에요. /성형주 기자

가뭄 때문에 괴로워하는 태종에게 또다시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어요. "전하, 어젯밤에 관창(★)에서 쌀을 훔친 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옵니다." "뭣이라?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느냐?" "제삿밥 한 그릇을 마련하려고 쌀을 훔친 것인데, 옥에 갇혀 제사를 지내지 못하자 절망하여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제삿밥 한 그릇 때문에 아까운 목숨이 사라지다니 안타깝구나. 이 모두가 과인이 부덕한 탓이로다. 그자의 집으로 제사에 쓸 쌀을 보내 위로하도록 하라."

그날 밤 태종은 심한 가뭄으로 백성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기 탓으로 여겼어요. 자신이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태종은 세자인 충녕대군(훗날의 세종)에게 양위할 결심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상선(★)에게 종이와 벼루, 먹과 붓을 가져오도록 하여 글자를 쓰기 시작했어요. '米, 米, 米, 米, 米, 米….' 그날 태종이 쓴 글자는 모두 '쌀 미(米)' 자였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수백 자를 썼다고 해요. 태종은 자신이 쓴 글자들이 모두 쌀이 되어 백성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씨를 쓴 것이에요.

[1분 상식] '양위(讓位)'란 무엇인가요?

임금이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에게 왕권을 넘겨주는 행위를 말해요. 조선시대에는 제1대 태조, 제2대 정종, 제3대 태종 등 세 임금이 양위했지요. 제26대 왕 고종도 순종에 양위하였지만, 이는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어요. 왕이 실제로 권력을 넘겨줄 마음이 없으면서 양위하겠다고 선언하여 세자와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양위 파동’이라고 해요. 조선 제14대 왕 선조가 양위 파동을 여러 번 일으킨 대표적인 임금이에요.

★주식(主食): 밥이나 빵과 같이 끼니에 주로 먹는 음식.

★관창(官倉): 관가의 창고.

★상선(尙膳): 조선시대에 내시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