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까지 쌀·옷감을 돈 대신 사용… 상품 유통 늘어나며 등장한 금속화폐
고려 성종 때는 몇몇 식당서만 썼지만 가지고 다니거나 보관하기 편리해 '해동통보' 만들어 널리 쓰이게 했어요
한국은행이 다음 달 12일에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의 문화유산 기념주화'를 발행한다고 해요. 이번에 발행되는 기념주화는 모두 3종으로, 역사마을인 하회·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남한산성을 소재로 하였어요. 그중 해인사 장경판전 주화는 사각형, 남한산성 주화는 삼각형으로 제작한다고 하여 큰 관심을 받고 있지요. 주화는 보통 원형으로 만들거든요. 주화(鑄貨)란 금속을 녹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화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주화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 지금부터 함께 역사 여행을 떠날 거예요. 자, 고려시대로 날아갈 준비가 되었나요?
◇화폐 제작을 건의한 대각국사 의천
1097년, 고려 제15대 숙종 임금 때였어요.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이 임금을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폐하, 주화를 만드는 관청을 설치하여 새로 금속화폐를 만들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주화? 돈을 만들자는 말인가?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인가?"
▲ /그림=이창우
"예. 주화는 백성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일 것입니다. 우선 돈은 물처럼 끝없이 흘러갑니다. 주화를 백성에게 퍼뜨리면, 위와 아래로 막힘없이 고루 돌아다니겠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게 이익을 나눠주는데, 그 날카로움이 칼날과 같아 날마다 써도 둔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주화의 생김새를 보면 몸은 둥글고 가운데의 구멍은 네모난데, 둥근 것은 하늘이며 네모난 구멍은 땅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이것은 주화가 만물을 덮고 받쳐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의천의 이야기를 들은 숙종은 신하 윤관에게도 의견을 물었어요. 그러자 윤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화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나라 살림을 키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보관과 운반이 편리한 금속화폐를 새로 만들어 널리 쓰이게 하면 세금을 걷기도 편하고, 상업을 발달시켜 나라 경제에도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숙종에게 새로운 화폐 제작을 건의한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로, 숙종 임금의 동생이었어요. 11세에 승려가 되겠다는 뜻을 밝히고, 궁궐을 나가 영통사라는 절에 머물며 불교를 공부하였지요. 송나라로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는 흥왕사(興王寺)라는 절을 주관하는 스님이 되어 제자를 가르치며 불교 서적을 모으거나 편찬하였고요. '속장경(續藏經)'이라는 경전을 제작하여 고려의 불교 발전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어요. 또한 윤관은 숙종이 특별히 믿고 의지하던 신하로, 훗날 별무반이라는 군대를 만들어 동북 지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9성을 설치하여 고려의 영토를 넓히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고려시대 최초의 금속화폐 '건원중보'
▲ /그림=이창우의천의 건의에 따라 숙종은 주화를 만들어 널리 쓰이게 하겠다는 뜻을 조정에 발표했어요. 그리고 '주전도감(鑄錢都監)'이라는 관청을 세워 새 주화를 만들게 하였지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102년 주전도감에서 '해동통보(海東通寶)'라는 동전을 만들어 나랏일을 맡은 관리나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주화 유통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 노력한 것이에요. 그렇다면 해동통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였을까요?
삼국시대까지는 금속화폐보다 주로 쌀과 베를 중심으로 한 물품화폐가 널리 이용되었어요. 학자들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기록과 유물로 모두 전하는 '건원중보(乾元重寶)'를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로 보고 있습니다. 건원중보 철전(鐵錢·철로 만든 돈)의 실물은 1910년대 초 개성 부근의 고려시대 무덤에서 건원중보 동전(銅錢·구리로 만든 돈)과 함께 출토되었어요. 건원중보 철전이 주조된 이후에 건원중보 동전이 추가로 주조·발행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통보·중보는 '귀중한 보배'라는 뜻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인 996년에 철을 녹여 만든 주화예요. 해동통보보다 약 100여년 앞서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건원중보는 차와 술,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만 부분적으로 사용되었고, 쌀이나 옷감 같은 물품이 여전히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였어요. 그 후 농업과 수공업에서 생산력이 발달하고 상품 유통이 조금씩 활발해지면서, 보관과 운반이 편리하며 기준이 명확한 금속화폐의 필요성이 점점 커졌지요. 그래서 고려시대에 주전도감이 설치되고 해동통보라는 주화가 만들어진 것이에요. 그렇지만 고려시대까지는 화폐 유통이 활발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런데 건원중보와 해동통보에 들어간 '중보'와 '통보'는 무슨 뜻일까요? 고려의 주화는 이름과 모양,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중국 당나라의 주화를 본떠 만든 것이에요. 주화의 이름으로 사용한 '건원'은 새 임금이 즉위했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붙이던 연대(年代)에 대한 칭호인 연호이고, '해동'은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에요. 통보와 중보는 '귀중한 보배'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주화는 그리 널리 사용되지 못했어요. 이와 달리 조선시대인 1600년대 만들어진 상평통보는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고 해요. 조선시대의 화폐 사용에 대해 더 탐구하여 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정호섭 교수(한성대 역사문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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