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독립 위해… 한국광복군 세운 김구

bindol 2021. 11. 5. 04:49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간 김구… 젊은 청년 모아 한인애국단 조직, 임시정부 주석 돼 독립운동 이끌어
해방 후 남북이 이념 차로 대립하자 끝까지 통일정부 세우려 노력했죠

얼마 전 중국 정부가 충칭시에 있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보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우리 국민이 크게 반가워하였어요.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로 우리나라가 일제에 주권을 빼앗겼을 때 독립 투쟁을 벌인 군대예요. 중국 충칭시의 한 건물에 광복군 총사령부를 두고 활동했지요. 여러분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거예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세우는 데 앞장선 김구 선생이에요. 김구 선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볼까요?

 /그림=이창우

◇임시정부에서 일하고자 상하이로 간 김구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는 15세에 한문학을 배우고, 동학농민운동(1894~1895)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몸을 피하게 되었어요. 이듬해 귀국하여 일본군 첩보 장교인 쓰치다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수감 중이던 1898년 감옥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이후 신민회(新民會)라는 조직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다시 체포되었지요. 그러다가 3·1운동(1919)이 일어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중국 상하이로 향합니다.

임시정부는 3·1운동 후 세워진 조직이에요.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임시로라도 정부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러시아 연해주, 중국 상하이, 국내의 한성 등 여러 곳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지요. 얼마 후 여러 곳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세워졌던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었고요. 이동녕, 이승만, 안창호, 김규식, 이시영, 최재형, 이동휘, 문창범 등이 당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었어요. 상하이 임시정부로 향한 김구는 안창호를 찾아갔습니다.

"문을 지키는 일이라도 좋으니, 임시정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일하게 해주십시오."

 1921년 촬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진이에요. 김구(앞줄 왼쪽 셋째)·안창호(둘째 줄 오른쪽 다섯째) 선생 등의 모습이 담겼어요. /조선일보 DB

그때부터 김구는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등 여러 직위를 거치며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어요. 1931년에는 독립운동 정신이 투철한 젊은이들을 모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조국 위해 모인 한인애국단과 한국광복군

1932년 1월 8일 독립운동가 이봉창이 일본 군대의 사열식을 참관하고 궁으로 돌아가는 일본 국왕 행렬에 폭탄을 던졌어요. 이때 일본 국왕을 암살하지는 못하였지만,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지요. 그에 이어서 4월 29일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이 중국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전승 기념 겸 천장절(天長節·일본 국왕 생일)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 육군대장 시라카와를 처단하고, 일제 주요 인물들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중국 정치가 장제스는 윤봉길의 의거에 대해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젊은이가 해냈다"고 말했어요. 이봉창과 윤봉길은 바로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단원이었습니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국 충칭으로 옮기면서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었고, 한국광복군을 세워 독립 투쟁을 이어나갔어요.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광복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시켰습니다. 광복군은 중국 각지에서 중국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싸웠지요. 1943년에는 영국군의 요청으로 미얀마, 인도 전선까지 나아가 싸우기도 했습니다.

◇"내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

 /그림=이창우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어요. 하지만 이념 대립으로 인해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지요. 조국에 돌아온 김구는 한반도에 통일정부를 세우고자 노력하다가 암살을 당해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김구는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 적어 놓았어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고 할 것입니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벌인 최대 규모의 항일 독립운동이었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3·1운동 후 세워졌지요. 3·1운동이 일어난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자세히 알아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조규태 교수(한성대 역사문화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