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서 온 주몽과 결혼한 소서노
남편 도와 지역 세력 키우면서 기원전 37년에 고구려 세웠어요
한반도 온 후엔 아들 온조와 함께 한강 유역 수도로 백제 건국했죠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영어·수학 가운데 한 과목이라도 1등급을 받은 수험생 중 45.2%가 여학생으로 조사됐어요. 이렇게 수능 1등급에서 여학생 비율이 높은 것은 수능을 치러온 이래 지난해가 최고 기록이라고 해요. 이를 두고 신문에서는 '수능은 소녀(少女)시대' '수능에서 여(女)풍당당'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실으며 이에 대한 소식을 전했지요.
여풍당당이란 용어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그 활약이 아주 두드러질 때 하는 신조어예요. 이때 여풍이란 여성의 활약상이나 영향력을 일컫지요. 우리 역사에서도 여풍당당을 이끈 여러 인물이 있었어요. 그중 오늘은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여걸 중의 여걸, 소서노에 대해 알아볼게요.
◇부여에서 온 청년 주몽을 만나다
"딸아, 부여에서 온 청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졸본 지역에서 세력이 컸던 연타발이라는 사람이 딸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연타발의 딸이 대답했지요.
"활 솜씨도 뛰어나고, 지혜로운 것 같아요. 부여에서 부하들을 데리고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면 용기와 지도력도 훌륭한 것 같고요."
"그래. 그렇다면 저 청년을 네 배필로 삼으면 어떻겠느냐?"
"네. 그러면 그와 함께 힘을 합쳐 우리 집단의 세력을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림=이창우
연타발이 말한 부여에서 온 청년은 주몽이에요. 주몽은 어머니 유화와 함께 부여의 궁궐에서 자랐지요. 지혜와 능력이 뛰어났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부여의 왕자들에게 미움과 질투를 받아 목숨까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돼요. 그래서 부여에서 도망쳐 졸본 지역에 이르렀지요.
◇주몽을 도와 새 나라를 세우다
연타발의 딸은 소서노라는 여인이에요. 부여의 왕 해부루의 손자 우태와 결혼해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낳았지요. 그러나 남편 우태가 죽은 뒤 두 아들과 함께 과부로 살고 있었어요.
소서노가 졸본 지역에서 이미 세력을 키운 인물 대신에 주몽을 배필로 택한 것은, 비록 지금의 세력은 보잘것없지만 앞날이 기대되는 인물과 함께 미래를 멋지게 개척할 뜻을 세운 것이고요.
연타발이 주몽에게 소서노와 결혼하기를 권하자, 부여에서 쫓겨 온 주몽도 자신에게 힘이 돼 줄 세력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흔쾌히 소서노를 아내로 맞이했어요.
소서노는 재물을 비롯한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주몽에게 줘 세력을 키우도록 도와줬어요. 소서노의 도움으로 주몽은 장수와 군사를 모으고 훈련해 졸본 지역의 여러 집단 가운데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됐지요. 그리고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새 땅으로 걸음을 옮기다
"부인, 죄송하오. 유리를 태자로 삼아야겠소."
"참으로 서운하옵니다. 이 나라는 폐하께서 저와 함께 세운 나라가 아닙니까?"
주몽이 고구려를 세워 왕위에 오른 지 19년이 지나 부여에서 한 청년이 주몽을 찾아왔어요. 그의 이름은 유리, 주몽의 아들이었지요. 주몽은 졸본에 내려오기 전 부여에 있을 때, 이미 예씨 부인과 혼인한 상태였어요. 주몽이 부여에서 도망칠 때 예씨 부인은 임신하고 있었고요. 그 뒤 예씨 부인이 낳은 아들이 커서 고구려로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지요. 그로부터 6개월 뒤 주몽은 4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태자였던 유리가 주몽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르죠.
이때 소서노는 매우 특별한 선택을 하지요. 유리왕의 눈치를 보며 고구려에서 비굴하게 사는 대신에 두 아들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에요.
◇아들 온조와 함께 새 나라를 세우다
소서노는 두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향했지요. 이때 오간·마려 등 신하 열 명과 많은 백성이 이들을 따랐다고 하니 당시 고구려에서 소서노의 세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만주 땅을 떠나 한반도로 내려온 소서노와 두 아들은 한강 부근에 이르렀어요. 도읍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를 두고 비류와 온조의 의견이 둘로 갈렸을 때, 소서노는 지금의 인천인 미추홀을 도읍지로 정한 장남 대신에 한강 유역을 도읍지로 정한 차남을 선택하죠. 온조와 함께 한강 유역에 새 나라를 세운 것이에요. 소서노가 온조와 함께 새로 세운 나라가 바로 백제랍니다.
비류가 나중에 미추홀로 도읍을 정한 것을 후회했고, 미추홀로 갔던 백성이 온조에게 돌아왔다고 하니 소서노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소서노는 그저 왕비나 왕의 어머니가 아니라 여린 몸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두 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위대한 인물이었어요. 아마도 소서노가 아니었다면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것도, 온조가 백제를 세우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걸’이란 용기가 뛰어나고 넓은 마음과 굳은 의지를 지닌 여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대별로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여걸을 알아보고, 그들이 이룬 업적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봅시다.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전덕재 교수(단국대 사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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