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담배의 해로움, 조선 시대에도 알았대요

bindol 2021. 11. 5. 04:50

'남쪽서 온 풀'이라고 불린 담배
성별·나이 상관없이 유행하자 영조 때는 담배 농사 금지령 내려

"정신 해치고, 이가 일찍 빠진다…" 실학자들 나서서 해로움 알렸죠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뉴스나 신문에서 가장 많이 본 말 중 하나가 '담배'일 거예요. 올해부터 담배 가격이 무려 80% 가까이 오른 데다 음식점을 비롯해 카페, PC방 등 공중 이용 시설에서 흡연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지요. 이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에는 금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과는 정반대로 210여년 전 조선시대에는 흡연을 장려한 왕이 있었다고 해요. 담배는 몸에 무척 해로운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담배를 둘러싸고 설전(舌戰)이 벌어졌던 조선시대로 함께 떠나 봐요.

◇"남령초의 이로운 점을 증명하라"

1796년의 어느 날,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초계문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험 문제를 냈습니다. '그대들은 들은 것을 모두 동원해 남령초의 이로운 점을 자세히 증명해 보라.' 그러면서 정조는 남령초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혔어요.

 /그림=이창우

"열심히 책을 읽으며 나랏일을 꼼꼼히 챙기느라 마음과 몸에 피로가 쌓이고 늘 가슴속이 막혀 있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잦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약을 구해봤지만, 오직 남령초에서만 힘을 얻었다. 남령초 덕분에 가슴속에 막힌 것이 없어져 편안하게 잠잘 수 있었다."

정조는 뒤이어 "여러 식물 중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시험 문제를 받은 '초계문신'은 정조가 규장각에 특별히 마련한 교육·연구 과정을 밟던 문신(文臣)을 말해요. 정조는 자신이 펼칠 개혁과 문화 정치에 힘을 보탤 인재를 키우고자, 37세 이하의 젊고 재능 있는 신하를 선발하여 초계문신으로 삼아 재교육하였답니다.

◇광해군 때 우리나라에 전해진 담배

정조가 사람에게 이롭다고 칭찬한 남령초가 무엇이었을까요? 이미 예상했겠지만, 정답은 '담배'예요. 담배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일행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들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였는데, 그때 원주민이 긴 대롱에 어떤 풀의 잎사귀를 말린 것을 넣고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이는 것을 보았어요. 그것이 바로 담배였지요. 그들은 신기해하며 담배를 유럽에 전하였고, 이후 세계 여러 나라로도 전파되었어요. 담배를 뜻하는 '타바코(tobacco)'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담바고'로 변했다가 '담배'가 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 때인 1616~1617년 무렵으로 추정돼요. 조선왕조실록에는 1616년과 1617년 사이에 담배가 바다를 건너왔는데, 1621~1622년경부터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담배 유행하자 논을 담배밭으로 바꾸기도

 /그림=이창우이 무렵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이라는 책에는 "담바고는 풀 이름인데 남령초, 또는 남초라고도 불린다. 근래에 일본으로부터 왔다"는 기록이 있어요. 담바고, 즉 담배가 '남쪽에서 온 신령스러운 풀'이란 뜻으로 남령초, 또는 '남쪽에서 온 풀'이라 하여 남초라고도 불렸다는 것이에요.

담배는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하였어요. 양반, 상민 등 신분은 물론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웠어요. 너도나도 담배를 피우니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이 늘어났고, 쌀농사를 지어야 할 논에도 담배를 심어 논이 담배밭으로 변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영조 때인 1732년에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의 기름진 땅에는 담배를 심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까지 내렸습니다.

◇"정신을 해치는 요망한 풀"

물론 정조와 달리 담배 피우는 것을 반대한 사람도 많았어요. 영조 때의 실학자인 이익은 "담배는 안으로는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듣고 보는 것을 해친다. (담배를 피우면)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이가 일찍 빠지며, 살이 깎인다"며 담배의 해로움을 지적하였지요.

정조 때의 실학자인 이덕무도 담배를 해로운 것으로 여겼어요. 이덕무는 학식이 매우 뛰어나 규장각에서 일하며 정조의 신임을 받았는데, 담배에 대해서는 정조와 정반대 의견을 펼쳤답니다. "세상에 담배만큼 나쁜 게 없다. 자식에게 담배를 가르치는 부모는 무식한 부모이며, 부모가 피우지 말라는데도 피우는 자식은 버릇없고 못된 자식"이라고 하였어요.

그런가 하면, 이보다 앞선 1638년 '인조실록'에는 "담배를 오래 피운 사람이 몸에 해로우며 이로움이 없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하여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는 기록이 등장하기도 한답니다. 먼 옛날 사람들도 흡연의 해로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조선시대 제22대 왕인 정조는 왜 담배를 이롭다고 주장했을까요? 단순히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변명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시 담배가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어 농민이 선호하였던 실정을 고려한 것일까요? 혹시 다른 이유는 없었을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학성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