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실용적 학문 배워 기중기 만든 정약용

bindol 2021. 11. 5. 04:53

청·서양 학문도 익힌 실학자 정약용
서양기술 소개서 '기기도설' 읽고 원리 응용해 기중기·수레 등 개발
도르래 12개로 만든 '거중기'… 한강 배다리·수원 화성 공사에 사용

최근 열린 아시안컵 국제 축구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27년 만의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한국 대표팀을 맡은 슈틸리케 감독은 이 대회를 통해 국내 축구 팬들로부터 독특한 별명을 얻었지요. 바로 '다산 슈틸리케'예요. 한국 대표팀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실학 축구를 펼쳤다는 평가도 나왔죠. 다산은 조선 후기의 학자였던 정약용의 호(號)예요. 실학 축구는 다산 정약용이 추구했던 실학과 비슷하다며 붙인 말이죠. 실학이 무엇이기에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축구를 실학 축구라고 할까요?

◇서양 기술을 소개한 책 한 권

1780년대 어느 날, 정조 임금이 정약용을 불러 책 한 권을 건네주며 말했어요.

"기기도설이라는 책이다. 화성 건설에 이 책을 참고하도록 하라."

"기기도설요?"

"그래. 서양에서 만든 여러 기구를 소개한 책이다."

 그림=이창우

'기기도설(奇器圖說)'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파됐는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600년대 초에 중국을 방문한 테렌즈라는 서양 선교사가 16세기까지 이뤄진 서양 기술을 중국에 소개한 책이에요. 물체의 힘과 운동에 관한 원리를 소개하고 그 응용 기구와 장치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지요. 그 뒤로 정약용은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열심히 보았어요. 그리고 그 책에 등장하는 어떤 기구에 특별히 큰 관심을 뒀지요.

◇배다리 건설과 화성 공사에 도움을 주는 기구들을 만들다

정약용은 1789년 한강에 배다리를 놓을 때에 기중기를 고안해 공사를 크게 도왔어요. 특히 화성(수원성) 공사에서도 기중기를 이용했어요. 그는 '다리를 놓거나 성을 쌓는 데 꼭 필요한 기구가 있구나! 그런데 이 그림 속 기구는 구리로 만든 나사의 도르래가 있어야 하네. 당장 조선의 기술로는 어렵겠어.'

정약용이 기기도설을 보면서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핀 것은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데 쓰는 기중기라는 기구였어요. '기기도설'에 나온 기중기는 구리 나사와 구리 바퀴에 톱니까지 뒷받침돼야 했기에 당시 기술로는 만들지 못하리라 생각했어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수원 화성이에요. 건축을 할 때, 실학자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가 큰 도움이 됐답니다. /정경렬 기자

'그렇다면 우리 형편에 맞게 도르래만을 이용해 기중기를 만들 수 없을까?'

정약용은 이런 생각으로 연구를 거듭해 도르래 12개만으로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리는 기구를 만들었어요. 정약용이 도르래만을 이용해 만든 기구가 바로 거중기라는 것이에요. 조선식 기중기인 셈이지요. 정약용은 거중기와 함께 고정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녹로, 무거운 짐을 쉽게 운반하는 유형거라는 수레도 개발했어요.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

정약용은 이처럼 배다리를 놓고 수원 화성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구들을 만들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정조의 명을 받아 화성을 설계했고, 홍역에 관한 의학책인 '마과회통'을 쓰기도 했지요. 성을 설계하고, 기구들을 발명했다면 정약용은 과학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의학책을 지었으니 의학자라 불러야 할까요? 도대체 정약용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정약용은 문신이며 학자였어요. 성균관에 들어가 특별 시험에서 1등을 독차지하며 정조의 눈에 띄었고, 문과에 급제해 규장각 관리로 일했죠. 그런데 유학을 공부한 학자가 어떻게 성을 설계하고 성을 쌓는 데 도움을 주는 기구들을 개발했을까요? 그건 정약용이 유학뿐 아니라 서양 과학과 의학, 천문, 지리도 공부했기 때문이에요. 이를 바탕으로 나라의 경제와 백성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용적 학문을 연구했죠.

◇실학과 실학 추구

실학의 발달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어요. 조선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인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나라여서 유학이 두루 발달했어요. 특히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깊이 연구하는 성리학이 널리 퍼졌지요.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을 겪은 뒤로 백성의 삶이 점점 어려워져만 갔어요. 그렇지만 성리학은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지요. 그래서 학자 중 몇몇은 인간 본성만 추구하는 학문보다는 현실 생활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바로 정약용 같은 인물이지요.

그들은 청나라에서 들어온, 증거에 따라 학문을 연구하는 고증학과, 서양의 과학기술·문물을 받아들이며 백성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학문을 연구했어요. 그렇게 발달한 학문이 바로 조선의 실학이에요. 그래서 이번 아시안컵에서 축구 팬들은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실용적 축구를 펼쳐 결승전에 진출한 국가대표팀의 축구를 다산 정약용의 실학과 비슷하다고 느낀 것이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실학에는 세 가지 바탕이 되는 정신이 있어요.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것이지요. 각각 어떤 뜻인지 알아보세요. 또 정약용처럼 실학을 연구한 조선의 실학자는 어떤 인물이 있었는지도 알아보세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한희숙(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