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 임명자 자격 심사하는 '서경' 고려의 모든 관리가 거쳐야 했어요
대관·간관 합친 '대간'이 심사·감독
고위직 자손 채용하는 '음서'와 함께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답니다
얼마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있었어요. 당시 총리 후보자는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잘못을 따지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국회의원과 국민에게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요.
인사청문회란 국무총리나 장관 등 고위 공직에 지명된 사람 자신이 맡을 일을 잘해낼 수 있는지, 또는 도덕적인 자질을 갖췄는지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인사청문회 같은 제도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있었어요. 과연 어떤 제도였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대간의 서명이 있어야만 관직에 올라
고려 시대에 부모의 덕으로 관직에 나가게 된 한 인물이 있었어요. 그는 기쁘고도 들뜬 마음에 집에서 큰 잔치를 벌였지요. 잔칫집에는 친척과 친구들이 찾아와 벼슬길에 나가게 된 그를 축하해줬죠. 그런데 한 친구가 관직에 나가게 된 그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 /그림=이창우
"자네, 관직에 나가는 것이 확실히 정해진 것인가?"
"그렇다네. 폐하께서도 임명을 허락하셨다고 하니 확실한 것이지."
"글쎄? 대간의 서명을 받았나?"
"대간의 서명? 그게 뭔데?"
"대간은 간쟁과 감찰 임무를 맡은 관리를 말해. 그 관리들의 심사와 동의를 거쳐야 관직에 나아갈 수 있다네."
"그런가? 혹시 내가 우물가에서 숭늉 찾은 건 아니겠지?"
"자네는 인품이 훌륭하니, 꼭 대간의 동의를 받아 관직에 오를 걸세. 걱정하지 말게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이나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의 자손을 과거라는 시험을 거치지 않고 관리로 특별히 뽑은 것을 음서제도(蔭敍制度)라고 해요. 음서제도는 고려 시대부터 제도화돼 조선 시대로 이어졌죠.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권력이나 세력을 지닌 사람의 자손들은 관직에 오르기가 참 쉬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과연 실제로 그랬을까요? 고려 때 관리를 임명하는 제도 중에 또 다른 특별한 제도가 있었어요. 바로 서경제도(署經制度)라는 것이에요. 서경에서 '서'는 '서명'을, '경'은 '거친다'를 뜻하지요. 왕이 관리를 임명했다 해도 대관이라고 불리는 어사대 소속 관리와 간관이라고 일컫는 중서문하성 소속의 낭사라는 관리들이 이에 동의를 하고 나서, 임명장에 서명을 해야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는 제도랍니다. 대관과 간관을 합하여 '대간'이라 했어요.
즉, 관직에 새로 사람을 임명한 뒤에 자격에 별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하면 임명장에 서명하고, 임명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서명을 하지 않았어요. 대간의 서명이 없으면 임명자는 관직에 오를 수 없었지요.
◇조선으로 이어진 서경제도
조선 태종 때인 1415년 4월 중순쯤이었어요. 태종이 정5품에 해당하는 벼슬인 헌납이란 관직에 한 인물을 임명했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간들이 서명 마감일이 지나도록, 그 인물의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즉, 태종의 임명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은 것이지요. 태종이 대간들에게 화를 내며 말했어요.
▲ /그림=이창우
"어찌하여 헌납의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사헌부 소속의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지요.
"전하, 그자는 돈에 눈이 멀어 함께 고생해온 본래의 아내를 버리고 부잣집 딸, 그것도 병든 여자에게 새장가를 든 자이옵니다."
대간의 말을 듣고 태종은 그 인물의 임명을 없던 일로 했대요. 이처럼 서경제도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로 이어졌지만, 다른 점이 있어요. 고려 시대에는 1품에서 9품까지 모든 관리의 임명에 대간의 동의가 있어야 했지만, 조선 시대에는 5품 이하의 관리 임명에만 적용된 것이에요.
◇서경제도를 실시한 까닭은
고려 시대에 대간이 어사대 소속 관리와 중서문하성의 낭사를 말했다면, 조선 시대에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를 대간이라고 불렀어요. 고려의 어사대와 조선의 사헌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의하고, 나라의 기강이나 풍속을 바로잡고, 관리들의 잘못과 불법행위를 살피며 감독하는 일을 맡은 관청이었어요.
고려의 중서문하성 낭사나 조선의 사간원은 왕이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결정을 하면 이를 고치도록 왕에게 아뢰는 일을 맡았고요. 태종뿐 아니라 다른 왕들이 대간이 서경권을 행사하는 것에 불만을 품자 사헌부나 사간원에서는 임금께 이런 글을 올린 적도 있대요.
"전하, 대간이 서경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전하의 명을 거역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홀로 수많은 인재를 다 살펴 구별할 수 없으니, 이를 돕고자 할 따름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우리 역사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닮은 관직이 있었어요. 고구려의 국상, 백제의 상좌평, 신라의 상대등이 대표적이지요. 고려와 조선에도 국무총리와 닮은 관직이 있었는데, 어떤 관직이었을까요? 또한 고려의 어사대와 조선의 사헌부는 오늘날의 어떤 관청과 닮은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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