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병 낫게 해 인정받은 허준
임진왜란 땐 선조 곁에서 함께하며 중인 신분으로 갖기 힘든 벼슬 얻어
귀양 가서도 집필했던 '동의보감'… 보물서 7년 만에 국보로 지위 올라요
최근 문화재청이 '동의보감'을 보물에서 국보로 높여 지정하였어요. 동의보감은 조선 중기의 한의학자 허준이 쓴 한의학에 대한 책이에요. 2008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7년 만에 국보로 그 지위가 높아진 것이지요. 2009년에는 의학 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고요.
동의보감이라는 책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에서 국보로 문화재로서 지위가 오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의보감을 쓴 허준 역시 조선 최고의 의학자로 우뚝 섰던 인물이에요. 벼슬 또한 중인 신분으로 의술에 관한 일을 맡았던 관리로서는 신분을 훌쩍 뛰어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었고요. 허준이 당시에 어떤 공로를 쌓았기에 그렇게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왕세자의 두창을 치료하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 때인 1590년, 왕자였던 광해군이 두창(천연두)이라는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고 있었어요.
▲ /그림=이창우
"내의원의 의원들은 무엇을 한단 말인가? 세자의 병을 고칠 의원이 정녕 없단 말인가?"
선조가 다급한 마음에 어의를 비롯한 내의원 의원들을 불러 크게 꾸지람을 하였지만, 세자의 병을 고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의원이 없었어요. 당시 두창은 전염병의 일종으로 사망률이 높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병이었어요. 고치기도 어려울뿐더러 자칫하면 전염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지요. 그때 한 인물이 임금 앞에 나서며 말했어요.
"전하, 제가 세자마마의 병을 치료해 보겠습니다."
"자네는 누군가?"
"허준이라고 하옵니다."
◇중인 신분으로 정3품 당상관에 오르다
허준은 목숨을 걸고 세자의 두창을 치료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고, 결국 세자의 두창을 말끔히 치료하였어요. 선조 임금은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한 허준의 공을 높이 여기며 허준에게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렸고요.
서얼 출신이었고 기술관이었던 허준에게는 정3품 당상관이란 벼슬은 오르지 못할 높은 벼슬이었어요. 당시의 신분 구조로는 서얼과 기술관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은 정3품 당하관이 최고였지요.
허준은 양반 가문인 무관 출신의 아버지와 양반 가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정실 즉 정식 부인이 아닌 첩이어서 그의 신분은 서얼로 양반이 아닌 중인이었지요. 조선에서 중인 신분은 번역과 통역의 일을 맡아 하는 역관이나 의술에 관한 일을 맡은 의관, 법률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율관, 천문이나 수학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천문관이나 산관, 그림에 관한 일을 맡은 화원 등 기술직 관리만 될 수 있었어요. 문관이나 무관 관직은 조선의 지배 계층인 양반 차지였지요.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이 되다
▲ /그림=이창우중인 출신의 의관인 허준에게 정3품 당상관이라는 벼슬이 내려지자 사간원 등에서 임금에게 이를 다시 정정해 달라는 청을 올렸어요. 허준이 비록 공을 세우기는 했으나 정도가 지나친 상을 내렸다는 것이었어요. 선조 임금의 대답은 "윤허하지 않는다", 즉 그 청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임진왜란 중인 1596년에 다시 광해군이 병에 걸렸어요. 이번에도 다른 내의원 의원들이 고치기 어려운 병이었어요. 역시 허준이 나서서 광해군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였지요.
"허준을 동반에 등용하노라!"
선조는 이번에는 허준을 동반에 오르는 상을 내렸어요. 동반(東班)이란 양반 중 하나인 문관을 뜻하는 것으로, 동반에 올랐다는 것은 곧 완전한 양반이 되었음을 뜻하지요. 허준이 중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이 된 것이에요. 허준에 대한 선조의 신임과 총애가 대단하지요?
◇귀양살이에서 '동의보감'을 집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준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란을 갈 때부터 곁에서 극진히 모셨어요.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선조를 따른 신하는 모두 17명 정도였는데 허준이 그중 한 명이었지요.
1604년에 선조는 힘겨웠던 피란길을 끝까지 함께한 공을 인정해 허준을 공신에 책봉하고 종1품 숭록대부란 벼슬을 내렸어요. 1606년에는 선조가 병을 얻자 허준이 선조의 몸을 보살피고 병을 낫게 하였는데 이에 대한 공으로 선조는 허준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란 벼슬을 주고자 했어요. 그러나 사간원과 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정1품의 벼슬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요.
"의관이 종1품 자리에 오른 것도 전례에 없던 것으로 이것만도 이미 그지없이 분에 넘치는 일인데, 대신과 같은 정1품이라니요. 부당하옵니다."
1608년에 선조가 죽음을 맞자, 허준은 의관으로 임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 2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이전부터 해오던 조선 의술정리를 체계적으로 엮었어요. 이것이 훗날 '동의보감'이라는 한의서로 불렸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동의보감처럼 인류 문화를 이어나가는 중요하고도 가치 높은 기록물을 유네스코에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에 힘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동의보감을 포함해 총 11건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지요. 과연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아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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