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처용' 탈 쓰고 춤추면 역신 도망간다?

bindol 2021. 11. 5. 05:13

너그러운 인품 가진 용의 아들 처용, 삼국유사에 역신 쫓은 내용 전해져
전염병 치료 방법 없었던 옛날엔 오곡밥 짓고 팥죽 쒀 뿌리는 등 병 막기 위한 민간요법 있었어요

지난주 내내 메르스라고 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했어요. 메르스는 중동 지방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로 호흡기 증상을 일으키는 신종 전염병이기 때문이에요. 전염병은 세균, 바이러스 따위의 병원체가 다른 생물체에 옮아 집단적으로 유행하는 질병을 말하지요.

오늘날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약이 개발되어 전염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있지만, 예방약이나 치료제가 없던 옛날에는 전염병은 인류의 무서운 재앙 중 하나였어요. 옛날 사람들은 전염병을 여러 사람에게 돌려가며 옮는 병이라고 하여 돌림병이라고 불렀고, 한자의 전염병 '역(疫)'자를 써서 역병이라고도 불렀어요. 그렇다면 옛날 우리 조상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어떻게 이를 물리치려 했을까요?

◇역병을 퍼뜨리는 귀신

옛날 사람들은 전염병을 역신(疫神), 즉 역병을 퍼뜨리는 귀신의 짓이라 여겼어요. 일반 백성은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역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역신을 쫓아내기 위한 여러 방법을 써서 역병을 물리치려 했어요. 오곡밥을 지어 먹는다든지, 팥으로 죽을 쑤어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린다든지, 소를 잡아 생피를 대문에 칠하면 역신이 물러간다고 생각했어요. 역신을 쫓기 위한 굿을 하기도 했고, 빨래판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득득 문지르면 시끄러운 소리가 듣기 싫어 역신이 물러간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대요.

 그림=이창우

통일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특한 방법도 있었어요. 일반 백성의 살림집에서는 어떤 인물의 얼굴을 그려서 대문 앞에 붙여 놓아 역신이 그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고, 궁중에서는 그 인물의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추며 나쁜 기운이나 전염병을 쫓고자 했지요. 그 인물의 이름은 '처용'이에요.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신을 물리치는 데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처용이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신라의 왕을 따라온 용의 아들

신라 제49대 임금인 헌강왕이 지금의 울산 지역으로 나들이를 나갔어요.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어느 포구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여 주변이 어두워져 길을 잃었죠. 갑작스러운 이상야릇한 날씨에 왕이 놀라 신하들에게 물었어요.

"무슨 날씨가 이렇듯 이상한 것인가?"

"아마도 동해에 사는 용이 벌인 일 같습니다. 용을 위하여 좋은 일을 베풀어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절을 짓도록 명령을 내렸어요. 그러자 곧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의 용왕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나와 곡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지요.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곳을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하여 개운포(開雲浦)라고 불렀어요.

◇역신을 물러나게 한 처용

그때 용의 아들 중 한 명이 왕을 따라왔어요. 그가 바로 처용이에요. 왕을 따라 서울 즉 경주에 온 처용이 나랏일을 정성껏 도와주자 왕은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과 맺어주고 벼슬도 내려 주었어요.

어느 날, 처용이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방 안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이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자기 아내와 함께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러나 처용은 도망을 치거나 난리를 치기는커녕 태연하게 마당에서 노래를 지어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요.


서울(경주) 밝은 달 아래 밤 깊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마는 뺏어간들 어찌하리.

그러자 처용의 당당하고도 너그러운 인품에 놀란 역신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잘못을 빌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처용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어요. '삼국유사'에 전하는 처용에 대한 이야기예요.

◇처용은 아라비아에서 온 인물?

그 뒤로 신라 사람들은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 모습을 그려 문에 붙였다고 해요. 궁궐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 처용 탈을 쓰고 처용이 추었다는 춤을 따라 추며 역신이나 악귀를 몰아내려 했고요. 이를 처용무(處容舞)라고 부르는데 처용무는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며 궁궐 의식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일제강점기에 그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1100년 넘게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가 되었지요.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요.

설화 속에서는 처용이 용의 아들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용의 아들은 아니었겠지요? 역사학자들은 처용이란 인물을 지방 세력가인 호족의 아들이었거나 당시 신라에 왔던 아라비아 상인, 즉 중동 지역 출신 인물로 짐작하고 있어요. 처용이 아랍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옛날부터 전해진 처용탈의 생김새가 얼굴색이 팥죽처럼 붉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마치 아랍인과 닮았고, '고려사'에 처용이 기이한 몸짓과 괴이한 복색을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고요.

[함께 생각해봐요]

옛날에는 천연두나 마마라고 한 두창, 호열자라고 한 콜레라, 마진이라고 불렀던 홍역 등이 대표적인 전염병이었어요. 조선 후기인 1798년에 어느 실학자는 홍역 치료에 관한 의학책인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썼고, 1879년에 어느 의학자는 서양에서 개발한 종두법을 일본인에게서 배워서 실시하여 두창을 예방하는 데 힘썼지요. 이들을 비롯해 이 땅의 전염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힘쓴 조선 후기의 의인들은 누가 있는지 알아보세요.

지호진ㆍ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