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던 거란의 배반으로 고구려 후손이 세운 '발해' 멸망해
친교 맺으려 거란이 낙타 보내오자 고려 태조 왕건, 과거 일로 분노하며
다리에 매달아 굶어 죽게 했어요
메르스라고 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요즘 수난을 크게 당한 동물이 있어요. 바로 등에 혹이 나 있는 낙타예요.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등에 혹이 하나 있는 단봉낙타를 거쳐 사람들에게 감염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동물원 등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낙타 40여 마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도 아닌데 격리되어 메르스 감염 검사를 받아야 했어요.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메르스 발생 전처럼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요. 그런데 메르스의 '메' 자도 몰랐던 1000년 전 고려시대에도 우리나라에서 낙타들이 큰 수난을 당한 적이 있대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다고?
"폐하, 발해가 멸망했사옵니다."
"뭣이라고?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란이 침략한 다음 무너졌다고 하옵니다."
"그럼, 거란이 발해를 침략해 멸망시켰다는 말이냐? 발해와 거란은 예로부터 사이좋게 지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거란이 이를 배반하고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우리 고려도 거란을 조심해야 할 것이옵니다."
926년에 발해가 거란에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려 태조 왕건이 분하고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발해는 만주 지역에 큰 세력을 펼쳤던 나라로 고구려의 후손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였어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중국 북동부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유목 민족인 거란족이 세운 나라였어요. 916년에 야율아보기란 인물이 흩어져 있던 거란 부족을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다음에 서쪽으로 돌궐과 토번 등 여러 부족을 공격해 세력을 넓혔으며 중국 땅을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었지요.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망명하다
당시 발해는 내분에 휩싸여 크게 쇠퇴하는 길을 걷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해요. 거란 군대가 925년 12월 말에 발해를 공격했는데, 발해는 거의 한 달도 안돼 926년 1월 15일 거란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거든요. 거란의 침략에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지요.
▲ 그림=이창우
거란이 세력을 키워 발해를 침략하기 전에 발해 왕은 남쪽의 신라, 고려 등과 외교적 관계를 맺으며 거란이 침입하면 도움받기를 기대했어요. 그러나 당시 고려와 신라는 발해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지요. 국력이 크게 약해진 신라는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나라 운명이 기우뚱 했고, 고려 역시 후백제와 치열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이웃 나라에 군사적 도움을 줄 만한 사정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발해가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자 발해 왕족이었던 대광현을 비롯해 수많은 발해인이 만주 땅을 떠나 고려로 향했어요. 고려 태조 왕건은 이들을 흔쾌히 고려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었고요. 그때부터 10년 세월이 흘러 고려는 후백제를 무너뜨리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돼요.
◇거란과 친하게 지낼 수 없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중원 즉 중국 한족이 다스리던 황허강 중·하류 지역으로 세력을 넓히려고 힘썼어요. 그러면서 한반도의 새로운 통일 국가인 고려와 친하게 지내고자 애썼지요. 고려와 친하게 지내며 자기들이 중원으로 세력을 넓히는 데 도움을 받거나, 그러지 못하면 방해라도 하지 말라는 속셈이었겠지요. 그래서 거란이 942년에 고려에 사신을 보내왔어요.
"폐하, 요나라에서 우리 고려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사신 30명과 함께 진귀한 동물 50필을 보내왔습니다."
"요나라라면 거란족이 세운 나라가 아닌가?"
"예. 몇 년 전에 나라 이름을 거란에서 요나라로 바꾸었습니다."
"거란은 발해와 서로 평화롭게 좋은 사이로 지내자고 하였다가 갑자기 배반하고 발해를 침략해 멸망시킨 나라다. 그렇게 도리를 지키지 않는 나라와는 절대로 친하게 지낼 수 없다."
◇거란에서 보낸 낙타가 고려에 와서 굶어 죽다
그러면서 요나라에서 보낸 사신 30명은 섬으로 귀양 보내고, 진귀한 동물 50필은 개경의 만부교라는 다리 아래 매어놓아 굶어 죽게 했어요. 그 진귀한 동물이 바로 낙타였지요. 그 일이 있은 뒤로 사람들은 낙타가 굶어 죽은 다리 만부교를 낙타교라고도 불렀으며, 요에서 보낸 낙타들이 만부교에서 굶어 죽은 사건을 만부교 사건이라고 불렀어요.
만부교 사건 뒤로도 고려는 요나라를 적으로 여겼어요. 왕건은 후세의 왕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데 새겨두어야 할 내용 10가지를 유언처럼 남겨두었는데 그중에 거란의 풍속과 언어를 본받지 말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렇게 고려에서 모욕을 당한 거란 즉 요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겠죠? 요나라는 993년 소손녕이라는 장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략한 1차 침략에 이어 세 차례나 대군을 몰고 고려를 침략했어요. 서희와 강감찬이 바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고려의 영웅이었고요.
[함께 생각해봐요]
고려를 세운 왕건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곁에서 평생을 함께한 신하 박술희에게 유언을 기록하게 했어요. 바로 후대 왕들에게 전하는 당부 글인 ‘훈요십조’이지요. 후대 왕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꼭 새겨두어야 할 10가지 교훈이에요. 이 내용을 보면 왕건이 고려를 어떤 나라로 키우려 했는지 또 당시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어요. 훈요십조의 10가지 내용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아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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