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시대 궁중에서도 '요리男'이 대세

bindol 2021. 11. 5. 05:28

유교 문화로 부엌일 여자가 했지만 요리 도구 무겁고
왕 신변 보호 위해 궁중 음식은 주로 남자가 맡아
찜 요리·굽는 요리 등 여러 분야 음식, 男요리사 '숙수'가 담당해 만들어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남자 요리사들이 출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어요. 셰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남자 요리사들은 대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방송은 물론 텔레비전 광고에도 등장하지요. 셰프(chef)는 프랑스어로 식당 주방의 책임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해요.

텔레비전에서 남자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어르신들은 세상이 바뀌어 딴 세상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해요. 조선 시대에는 남자와 여자의 본분과 역할을 엄격하게 구별하였던 유교 문화에 따라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여겼어요. 그 문화가 전통처럼 이어지며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을 꺼려 왔거든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남자 요리사들이 있었대요. 그것도 조선 최고의 음식이랄 수 있는 궁중 음식을 담당하는 요리사가 주로 남자였대요. 조선 시대 남자 요리사들의 활약을 살펴보러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궁중 요리사가 음식점을 차리다

1909년 무렵, 지금의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2층짜리 건물 앞을 지나며 사람들이 수군거렸어요.

"저 건물이 바로 조선에서 행세 좀 한다는 사람들만 드나든다는 명월관이군."

"명월관? 뭐 하는 곳인데?"

"유흥음식점이야. 술과 요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지."

 그림=이창우

"저곳에서 만드는 요리가 괜찮은가봐? 그러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겠지."

"저 음식점의 주인이 궁중의 남자 요리사였고, 그와 함께 궁중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남자 요리사 여러 명이 요리를 만든대."

궁중 음식을 만들던 남자 요리사가 음식점을 차리고, 궁중에서 요리하던 남자 요리사들이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궁중에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궁중에서 남자 요리사가 사라지다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해요. 이를 빌미로 일제는 1907년 7월 20일에 고종 황제를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어요. 황제의 자리는 아들인 순종에게 넘겨주게 하였고요.

고종 황제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대한제국의 내시들과 남자 요리사는 거의 해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당시 고종의 요리사였던 안순환이란 인물은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을 차렸고, 궁궐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잃은 남자 요리사들이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지요.

이런 역사적인 배경 속에 궁중 음식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어요. 궁중 음식을 만들던 남자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어 팔던 명월관은 임금처럼 궁중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소문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대신에 궁중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상궁들의 몫이 되었다고 해요.

◇궁중 음식을 만든 사람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살펴보면 궁중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남자 요리사에 대해 알 수 있어요. 궁궐에서 음식을 만들던 곳은 수라간이라는 곳이에요. 수라간은 임금이 거처하는 대전을 비롯해 왕비전과 세자전 등 궁궐 곳곳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을 하는 인원이 4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해요.

사옹원이라는 관청에서 임금의 수라와 궁궐의 음식 공급에 대한 일을 담당했는데 사옹원에 소속된 반감은 음식 조리 책임자로서 오늘날의 주방장에 해당하지요. 이들은 궁궐에서 일하던 관노 출신으로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궁중에서의 직무가 중요하여 품계와 직위가 주어졌어요. 그들 반감 아래에 각 영역의 전문 요리사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을 각색장이라고 하였어요. 고기 요리를 담당한 별사옹, 찜 요리 전문가 탕수증색, 채소 요리 전문 채증색, 굽는 요리 전문가 적색, 밥 짓는 반공, 떡 전문가 병공, 두부 전문가 포장, 술 빚는 주색 등 10개가 넘는 분야에서 활약했는데 이들 모두 남자였지요. 그리고 국가에 소속된 노비들인 관노였고요.

이처럼 궁중에서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를 숙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항상 밤에도 대기하며 왕의 명령을 기다리던 요리사도 있었어요. 이를 대령숙수라고 불렀고요.

◇궁중 음식을 남자 요리사가 만든 까닭은

그렇다면 수라간에는 요리하는 여자들이 없었을까요? 상궁과 나인들이 있었지만 몇 명 되지 않았다고 해요. 나인들은 기본적으로 수라간에서 왕과 왕비가 머무는 곳으로 음식을 나르는 역할을 맡았으며, 식재료 운반, 설거지 등 요리사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을 것으로 짐작해요. 상궁들은 이런 나인들을 지휘하고 감독했고요.

어째서 궁중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남자들이 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요. 왕의 신변 보호를 위해 믿을 만한 인물이 음식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기에 남자가 주방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인 사상 탓에 국가의 중요한 일인 왕의 수라를 여성에게 맡기기 어려웠을 거라는 거예요. 또한 궁중 음식은 재료 손질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야 완성되는 음식이었고, 재래식 도구를 이용해 요리해야 하기에 무척 힘이 들어 남자들이 맡았을 거라고도 합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1907년, 고종 황제를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빌미가 된 헤이그 특사 사건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 황제가 지시한 일이에요. 을사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가 억지로 맺게 한 조약이기 때문이고요. 과연 을사늑약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헤이그 특사 사건에 특사로 활약한 인물들은 누구였을까요? 헤이그에서 그들은 어떤 활약을 펼친 것일까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