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임진왜란 승리 이끈 거북선, 당시 첨단 기술력 담겼어요

bindol 2021. 11. 6. 05:10

[조선시대의 싸움배]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군관, '판옥선' 개조해 거북선 만들어
1층서 노 젓고, 2층서 화포 쏘며 3층은 덮개 덮어 적군 침략 막아
판옥선과 협력해 왜적 물리쳤어요

배를 만드는 회사들이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어요.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배가 왜 갑자기 팔리지 않게 된 걸까요? 세계 경제 침체로 인해 배를 사려는 수요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에요. 그에 비해 배를 생산해 공급하려는 양은 훨씬 많아요. 불황이 닥치기 전 투자해놓은 배 만드는 설비들도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는 실정이에요.

그렇지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어요. 조선 시대 거북선은 뛰어난 발상과 기술력을 토대로 만들어져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멋진 배였어요. 우리는 이러한 조상의 능력을 물려받아 세계 조선업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누려왔으니, 반드시 슬기롭게 불황을 이겨나갈 것이라 믿어요. 그런데 거북선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승리의 거북선, 이순신·나대용 함께 제작

임진왜란(1592~1598) 직전인 1591년 여수 가막만. 조선의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가막만 북쪽에 위치한 조선소(造船所·배를 만들거나 고치는 곳)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어요. 거북선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지요.

이순신 장군이 조선소에 도착하자 배 몸통의 생김새가 거북처럼 생긴 위엄 있는 철갑선이 보였어요. 이 배가 바로 거북선이었죠.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은 열심히 거북선의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고, 그 옆에는 나대용 군관(軍官·장군 수하에서 군사 업무를 수합하던 무관)이 지시를 내리며 서 있었어요. 나대용 군관은 이순신 장군 밑에서 활약하던 수하로 거북선을 비롯해 많은 병기를 만든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림=이혁

거북선의 멋진 모습을 본 이순신 장군은 나대용 군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네가 수고가 많았네. 귀선(龜船·거북선)이 바다에 나가면 왜적들이 깜짝 놀랄 거야." "그렇습니다. 이 귀선은 해전에서 우리 조선 수군의 사기를 크게 높여줄 것입니다." "그래. 분명히 우리 조선 수군의 비밀 병기가 될 거야." 귀선이 바로 거북선이에요. 거북은 한자로 귀(龜·거북 귀)이지요. 거북선은 임진왜란의 수많은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요.

조선의 싸움배였던 판옥선과 거북선

사실 거북선이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조선 초기부터예요.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 태종 임금 때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라는 기록이 나와요. 또 1415년 탁신이라는 문신이 '거북선의 전법으로 싸우면 많은 적과 충돌하더라도 적이 우리를 해칠 수 없으니, 거듭 정교하게 만들어 승리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고 해요. 그러나 옛날부터 있었던 거북선은 크기가 작았어요. 이순신과 나대용의 거북선은 3층으로 되어 있어 몸체가 매우 높았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대한 돌격 함선은 이순신·나대용의 거북선인 셈이죠.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군관은 거대한 거북선을 만들기 위해 조선의 싸움배 '판옥선'을 개조하는 방식을 썼어요. 판옥선은 2층 구조를 갖고 있어 효율적인 배였어요. 아래층에서는 안전하게 노를 젓고, 위층에서는 화살과 화포를 쏘며 전투에 전념할 수 있었지요. 판옥선 위를 튼튼한 덮개로 덮고 위에 칼과 송곳을 꽂아 적군이 함부로 배 위에 오르지 못한 게 거북선이에요. 적군은 덮개로 가려진 안을 볼 수 없어 거북선이 어떤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 거북선이 강했던 거였죠.

거북선의 용머리에서는 총을 쐈고, 양 옆구리로도 대포와 화살을 쐈어요.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에 대해 조정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어요. "거북선이 먼저 돌진하고 판옥선이 뒤따라 진격하여 계속 지자포, 현자포를 쏘고 뒤이어 포환과 활, 돌을 비와 우박이 퍼붓듯 하면 적의 사기가 이미 꺾이어 물에 빠져 죽기 바쁘니 이것이 우리 수군 승리의 비결입니다."

거북선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나대용 군관

나대용은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1583년 과거 시험 가운데 병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고, 1591년 전라좌수영의 군관이 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부하가 되었어요. 군관이라는 직급은 지금으로 치면 장교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답니다. 나대용 군관은 옥포해전에서 적의 군선 2척을 격파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고, 사천해전과 한산도해전에서는 총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기도 했어요. 1594년에는 승진해 전남 강진 고을의 현감으로 임명되었고, 그 후 연달아 여러 고을의 현감을 지냈어요.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그가 과연 어떤 무기를 만들었을까요? 적이 배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짧은 창검을 꽂아 놓은 중간 크기의 군함 '창선', 속도가 빠른 쾌속선인 '해추선' 등을 만들었다고 해요.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