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펑, 펑!" 무시무시한 화포로 해적 무찔렀어요

bindol 2021. 11. 7. 04:50

[진포대첩]

최무선, 화약 무기 배에 싣고 출동
고려 말에 화포로 해적 물리쳐 세계 최초 함포 해전에서 승리
아들 최해산은 '화차' 만들었어요

우리 해경이 지난달부터 우리 바다에서 불법 조업하는 외국 어선에 기관총, 기관포 등 공용 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중국 어선이 불법으로 우리나라 영해에 들어와 조업하면서 어족 자원이 줄어들고 어민들이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죠. 앞서 해경은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에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중국 어선들은 오히려 쇠파이프나 죽창으로 우리 해경을 위협하고 수십 척이 무리를 지어 대항하기도 했어요.

이에 우리 해경이 공용 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이 줄어들었답니다. 지난달 서해 우리 수역을 침범한 무허가 중국 어선 수는 1712척으로 지난해 같은 달(3953척)보다 절반 넘게 감소했어요. 덕분에 우리 어민들의 꽃게 수확량과 수익은 지난해보다 훨씬 늘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렇게 우리 바다와 해안 지역을 침략해 약탈을 일삼던 해적 무리를 화포(火砲)로 물리친 일이 있었어요. 그 통쾌하고도 흥미진진한 역사 현장으로 여행을 떠나 볼까요?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

고려 말인 1380년 8월 금강 하류의 진포(오늘날 전북 군산)에 배가 수백 척 나타났어요. 왜구가 쌀을 약탈하려고 집단으로 침략해 온 것이었죠. 이 무렵 왜구들은 고려가 혼란한 틈을 타 해안 지역을 자주 침범했어요. 큰 밧줄로 배를 서로 연결해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는 대규모 부대를 육지에 상륙시켜 여러 고을을 돌며 닥치는 대로 곡식과 재물을 약탈해 많은 백성이 고통받았답니다.

왜구가 몰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은 심덕부와 나세가 지휘하는 왜구 토벌대에 최무선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참여하게 했어요. 최무선은 그간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약 무기와 화포를 전함 100여 척에 싣고 진포로 나아갔답니다.

 그림=정서용

진포에서 맞닥뜨린 왜구들은 고려의 배에 화약 무기가 실려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배를 한곳에 모이게 한 뒤 고려 함대를 향해 돌격했어요. 고려 함대가 자기네 함대보다 훨씬 적은 것을 보고 자만한 것이죠.

그때 고려 함대에 있던 화포가 불을 뿜었고, 발사한 탄환들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왜구의 돌격선에 날아들었어요. 탄환이 떨어지는 순간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왜구의 배들은 불길에 휩싸였답니다. 연기와 화염이 하늘을 뒤덮었고 왜구들은 겁에 질려 얼음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해요.

최무선이 만든 화약 무기들이 왜구들의 배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고, 왜구들은 배를 버리고 허겁지겁 도망쳤어요. 육지에 올라온 왜구들은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인 지리산 운봉이라는 곳에 모였는데, 이성계 장군이 여러 장수와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여기 모여 있던 왜구를 모조리 무찔렀답니다. 그 뒤로 왜구가 점점 줄어들어 바닷가 백성들이 생업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해요.

고려 말 진포 앞바다에서 최무선이 만든 화약 무기를 앞세워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를 진포해전 또는 진포대첩이라고 불러요. 진포해전은 세계 최초로 배에 화포를 장착해 적을 공격한 함포 해전이랍니다. 화약 무기를 개발한 최무선의 노력이 백성들을 위해 빛을 발한 역사적 사건이었지요.

◇화약 무기를 만든 관청


진포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최무선은 화약을 만들고 화약 무기를 개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에요. 최무선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나라에 화약과 화약 무기를 만드는 전문 기관을 세워달라고 건의하였지요. 1377년 고려 조정은 화약을 개발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화통도감'이라는 관청을 설치하였답니다.

화통도감에서 본격적으로 화약 무기 연구에 들어간 최무선은 대장군, 이장군, 육화석포, 화포 등의 총포류와 화전, 철령전 같은 발사물, 주화 같은 로켓 무기 등 무려 18가지 화약 무기를 만들어냈어요. 이렇게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약 무기들이 진포해전에서 시험적으로 사용되어 큰 성과를 올린 것이지요.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도 아버지 뒤를 이어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조선의 백성들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답니다.

☞'화차' 발명한 최무선의 아들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1380~1443)은 아버지가 쓴 '화약수련법''화포법'이란 책을 보며 화약을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았어요. 1401년 병기를 만드는 관청 '군기시'에 무관으로 등용된 최해산은 새로운 화약 무기를 개발하는 데 힘썼답니다. 그 결과 수레 위에 수십 개의 총으로 이루어진 발사용 무기를 장착해 화약으로 단번에 수십~수백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화차'라는 무기를 개발하였어요.

최해산이 발명한 화차는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을 무찌르는 데 중요한 무기로 활용되었지요. 최해산은 화포와 여러 화약 무기의 성능을 향상시켜 세종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