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새해 운수 풀이책… 희망 주는 내용 많대요

bindol 2021. 11. 7. 04:51

[토정비결]

생년월일·육십갑자 통해 앞날 예상
19세기 초부터 민간에서 유행, 떠돌던 예언 구절 책으로 엮은 듯
명종·선조 때 활동한 토정 이지함
의학·수학·천문 등 여러 학문 익혀… 양반임에도 상업 활동에 종사

연말연시가 되면 집안의 번영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찾아보는 분이 많죠? 토정비결은 생년월일과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용해 앞날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상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그 막연함을 달래고자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토정비결을 들여다보는 것이죠.

토정비결의 운수는 단어 4개로 이뤄진 시 구절과 그에 대한 번역으로 구성돼 있어요. 가령 '花笑圓中(화소원중) 蜂蝶來戱(봉접래희)'는 '동산에 꽃이 만발하였으니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춤을 춘다'는 뜻인데, 소원을 이루고 온갖 기쁜 일이 생기는 좋은 운수라고 풀이할 수 있지요. 비유와 상징이 담긴 토정비결에는 비관적인 구절보다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는 내용이 많답니다.

◇언덕 아래 굴 파고 정자를 짓다

'토정비결'이라는 책 제목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이 쓴 비결(秘訣)이란 뜻을 담고 있어요. 이지함은 서울 마포 강변에 흙으로 언덕을 쌓아 아래에 굴을 파고 그 위에 정자를 만든 집에 살며 스스로 호(號)를 토정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림=정서용

이지함은 충남 보령에서 양반으로 태어나 명종과 선조 때 활동한 인물로 관련된 역사 기록이 많지 않아요. 다만 여러 설화집과 민담을 통해 신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언행이 유별났던 기인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유몽인이 쓴 설화집 '어우야담'에는 "이지함은 갓 대신 솥을 철모처럼 머리에 쓰고 다니다 배가 고프면 머리에 쓰고 있던 솥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또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 장인의 죽음을 미리 알아차렸다거나 해일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백성들을 높은 산에 대피시켰더니 실제로 해일이 밀려와 마을이 물에 잠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답니다. 사실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만큼 이지함이 유별났던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어요.

◇관리로 백성을 잘 보살폈대요

이지함은 기인인 동시에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어요. 정몽주와 정도전을 길러낸 고려 말의 대학자 이색의 후손으로 당대 뛰어난 선비이자 학자인 서경덕에게서 학문을 배웠답니다. 유학 외에도 의학, 수학, 천문지리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두루 익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대요.

이지함은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백성을 보살피는 데 힘을 기울였어요. 아산 현감을 지낼 때 '걸인청'이란 기관을 세워 가난한 사람과 노인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빈민 구제 정책을 펼쳤답니다. 특히 가난한 백성에게 기술을 가르쳐 나라의 구제만 바라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도록 이끌었다고 전해져요.

이지함은 상업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조선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가 엄격한 나라였기 때문에 사대부인 이지함이 당시 천하게 여겨지던 상업에 종사하는 건 다른 양반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그럼에도 이지함은 거리낌 없이 상업을 해 큰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신분에 매이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와 백성을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토정비결의 지은이가 이지함이 아니다?

많은 분이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썼다고 알고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쓴 것이 아니다"는 주장이 우세해요.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썼다면 16세기에 이미 책이 나왔을 텐데 200~300년 뒤에도 토정비결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에요.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나 '동국세시기'에도 토정비결이 언급돼 있지 않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무렵 민간에서 돌던 예언서나 예언 구절들을 누군가 책으로 엮어 토정비결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추측해요. 사람들이 연말연시에 토정비결을 보게 된 것도 100~15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거예요.

그럼 책 제목에 왜 하필 이지함의 호가 붙은 것일까요? 그 정확한 이유 역시 알 수 없지만, 예지력을 가진 기인으로 백성을 도운 이지함의 신화적인 이미지가 이 책과 가장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많아요.

☞육십갑자(六十甲子)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운행 질서를 천간(天干)이라고 부르고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열 가지로 나누었어요. 땅의 운행 질서는 지지(地支)라고 부르며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열두 가지로 구분하였고요. 천간에 속한 10글자와 지지에 속한 12글자를 차례로 하나씩 맞추어서 얻은 60글자를 육십갑자라고 하여 날이나 달, 해의 이름으로 사용했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신미양요, 갑오개혁 등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은 사건이 일어난 해의 육십갑자가 붙어있지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