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수도' 부산]
부산시, 피란 수도 유적 14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신청
전쟁 이틀 뒤 서울 점령당한 정부, 남쪽으로 후퇴하며 수도 이전
휴전 협정 체결 직후까지 수도 역할
지난달 부산광역시는 문화재청에 부산의 피란 수도 역사 유적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려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어요. 세계유산 잠정 목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르기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후보 명단을 말하지요.
유네스코가 후보 명단을 심사해 세계유산으로 결정하면 해당 문화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르게 됩니다.
▲ 부산 임시 수도 정부청사의 모습이에요. /문화재청
부산의 피란 수도 역사 유적은 6·25전쟁 때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로 수도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겼던 당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에요. '가덕도 등대' '부산항 제1 부두' '영도대교' '부산임시수도대통령관저'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당시 미8군 사령부의 지휘 본부였던 '워커하우스' 등 총 14곳이랍니다.
◇개항 이후 경남의 중심지 역할
1876년 조선이 군사력을 동원한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부산은 인천·원산과 함께 개항이 되었어요. 이후 부산은 근대도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고,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제1 부두를 비롯한 항만 시설이 건설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역항으로 발달하였지요.
부산이 인구와 면적 등이 서울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둘째로 큰 도시가 된 배경에는 6·25전쟁 때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던 역사가 있어요. 임시 수도란 내전이나 외국의 침략 등으로 수도가 점령되거나 함락 위험에 처했을 때 일시적으로 수도의 기능을 하도록 선택된 도시를 말해요. 고려와 몽골이 전쟁을 벌이던 1232년에도 무신정권이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의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던 일이 있었답니다. 고려가 몽골과 화해 조약을 맺고 몽골의 간섭하에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길 때까지 39년간 강화도는 고려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셈이죠.
◇북한의 침공에 남쪽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불법으로 남침해오자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북한군의 침입을 예상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없었어요. 6월 27일 소련제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정부는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이날 우리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해 충청남도 도청이 있던 대전으로 옮겨갔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7월 16일에 다시 경상북도 도청이 있던 대구로 이동했어요. 유엔군이 참전해 국군과 함께했지만 북한군의 거센 공세에 경북 지역까지 밀려난 거예요.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된다고 판단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부근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정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어요. 대구 북쪽에서 펼쳐진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기도 했지만, 전세가 호전되지 않자 정부는 대구도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해 8월 18일 부산으로 재차 옮겨갔답니다.
◇1023일 동안 임시 수도가 되다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면서 부산시 서구 부민동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은 임시 중앙청이 되었고, 부산극장은 임시 국회가 되었어요. 중앙사법기관도 부산 지방법원 건물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고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각국의 외교기관도 부산의 여러 건물로 옮겨왔어요. 여러 금융기관도 부산 곳곳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고요.
▲ 1951년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열린 6·25전쟁 1주년 기념식에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모습이에요. /국가기록원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국군과 유엔군의 공격에 밀린 북한군이 북쪽으로 후퇴를 하기 시작했어요. 9월 28일 국군과 연합군이 서울을 되찾으면서 정부는 10월 27일 수도를 서울로 옮겼답니다. 이렇게 임시 수도로서 부산의 역할은 70일 정도에서 끝나는 듯했어요.
그런데 11월 27일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에 몰려오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서울 이남으로 후퇴해야 했어요. 그해 1월 3일 정부는 다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했답니다.
이후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을 지나 그해 8월 15일까지 부산은 총 10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였어요. 이 무렵 부산은 전국에서 피란민 100만여 명이 몰려들었고, 이 중 상당수가 전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정착하였답니다.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던 최우
무신정권은 고려시대에 문신에 비해 홀대받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고려 조정을 주도한 것을 뜻해요. 1170년부터 1270년까지 이의방과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 최우, 최항이 차례로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어요.
이 중 최우는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뒤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주요 군사 지역에 성을 쌓았어요. 하지만 몽골의 침입을 제대로 막지 못해 1232년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야 했답니다. 이후 강화도는 1270년까지 39년 동안 고려의 임시 수도였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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