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과 최초의 지폐]
중국 북송 때 시작된 세뱃돈 풍습, 우리나라에선 일제강점기 때 시작
봉투에 '책값' 등 용도 적어 건네… 고려 말 탄생한 최초의 지폐 '저화'
조선 태종 때 다시 발행했지만 백성들 외면해 유통 실패했어요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새해 첫인사인 세배를 드립니다.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며 한 해의 복을 바라는 덕담을 건네지요. 화폐 발행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은 최근 세뱃돈으로 새 돈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많은 분이 새 돈으로 세뱃돈을 주고 싶어하는데, 새 돈을 만들려면 비용이 아주 많이 들기 때문이래요.
그런데 세뱃돈은 언제부터 주고받기 시작했을까요? 오늘은 세뱃돈의 역사와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지폐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옛날엔 세뱃돈을 '세배값'이라 불러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져요. 11세기 북송시대부터 음력 1월 1일이 되면 결혼을 하지 않은 자녀에게 '나쁜 일을 물리치는 돈'이라는 의미로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덕담과 함께 건네는 풍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에도 막부 시대인 17세기 무렵 대도시를 중심으로 설날에 '오토시다마'라고 부르는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 그림=정서용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말까지 세배를 하면 주로 먹을 것을 주거나 덕담을 건넸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세뱃돈을 주고받았다는 최초의 기록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등장합니다. 조선 말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영녕이 일제강점기 무렵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해동죽지'에 세배를 한 어린이들에게 '세배값'이라 부르는 세뱃돈을 건넸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때는 세뱃돈을 넣은 봉투 겉면에 '책값' '붓값' 등 세뱃돈의 용도까지 적어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고려 말에 처음 만들어진 '저화'
세뱃돈으로 흔히 쓰이는 지폐는 언제 처음 사용됐을까요? 고려 공양왕 때인 1391년, 고려 최고 행정기관인 도평의사사에서 이런 상소를 올렸어요.
"화폐로 사용해오던 동전과 은병이 유통되지 않고 쌀과 오승포만 화폐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이 점점 거칠어져 품질이 떨어진 탓에 오승포도 상거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탓에 쌀이 너무 귀하게 여겨지고 있으니 새로 저화(楮貨·닥나무 껍질로 만든 지폐)를 찍어 오승포와 함께 사용하면 어떨지요?"
은병은 병 모양으로 생긴 은화고 오승포는 베 또는 무명 날실로 짠 옷감이에요. 고려는 성종 때 철을 녹여 만든 건원중보라는 동전을 발행했고 숙종 때에는 주전도감이라는 관청을 세워 해동통보 등 여러 금속화폐를 만들어 유통했어요. 하지만 이 동전들은 널리 유통되지 못했고 백성 사이에서는 쌀이나 오승포가 물품화폐로 널리 유통되었답니다.
이후에도 고려는 은병과 쇄은 등 은으로 만든 화폐를 발행했지만 위조화폐가 등장하고 품질이 점점 떨어져 화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오승포도 품질에 문제가 생기자 저화를 찍어 유통하자는 상소가 올라온 것이죠.
이렇게 해서 최초의 지폐 '저화'가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가 멸망하면서 저화는 발행·유통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다시 등장했지만…
고려가 멸망하며 자취를 감춘 듯했던 저화는 1401년에 다시 등장합니다. 당시 조선의 재상 하륜이 태종에게 "국가가 백성에게 쓰는 돈은 저화를 사용하고, 백성이 나라에 조세를 낼 때는 곡식으로 내게 하자"는 의견을 전했어요. 태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듬해인 1402년부터 저화가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답니다. 당시 저화 한 장의 가치는 오승포 한 필, 쌀 두 말과 같은 것으로 정해졌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저화의 유통은 성공하지 못했어요. 백성이 저화를 가치 있는 화폐로 여기지 않아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후에도 조선 조정은 여러 번에 걸쳐 저화의 사용을 늘리고자 노력했지만, 백성이 저화를 외면하면서 그 가치는 점점 떨어졌어요. 결국 조선 중기 무렵에는 저화가 사실상 유통되지 않고 사라져버렸답니다.
첫 근대적 지폐 '호조태환권'
조선 말기인 고종 30년(1893년)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이용한 근대적 인쇄술로 찍어낸 근대적 지폐 ‘호조태환권〈사진〉’이 만들어졌어요. 조선 조정은 호조태환권을 통해 당시 통용되던 엽전을 새로 만들 지폐로 바꾸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엽전을 호조태환권으로 교환하는 업무를 맡은 일본인 사이에 운영권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벌어지면서 호조태환권은 실제로 사용되진 못했어요. 1952년 한국조폐공사가 1000원·500원권을 발행하면서 우리 손으로 만든 근대적 지폐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지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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