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장수왕의 남진정책 막기 위해 신라·백제 손잡았죠

bindol 2021. 11. 7. 05:11

[나제동맹과 여제동맹]

5세기 무렵 대제국 건설한 고구려, 수도 평양으로 옮겨 남진정책 추진
신라·백제, 100년간 동맹으로 대항

7세기에는 고구려·백제 동맹 맺고 한강 유역 차지한 신라 함께 공격
필요에 따라 동맹 맺거나 깨트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운용할 비용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앞서 사드 운용 비용을 미국이 모두 부담하기로 한 두 나라 간 합의와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에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동맹을 해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동맹(同盟)이란 둘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서로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하기로 맺은 약속 또는 이런 약속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뜻합니다.

한·미 동맹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 북한의 침략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이루어졌어요. 이후 한·미 동맹을 통해 우리나라는 북한의 군사 도발과 침략을 막을 수 있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안정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정서용

한·미 동맹 외에도 우리 역사에서는 여러 정치·군사동맹이 있었어요. 특히 고대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각자의 상황과 정세에 따라 서로 동맹을 맺고 국가의 생존과 삼국 통일을 모색했답니다.

◇고구려 남진정책에 맞선 나제동맹

5세기 초는 고구려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어요. 소수림왕 때 국정이 안정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영토를 넓혀 대제국을 건설했답니다. 특히 남쪽으로는 백제를 공격해 임진강 일대와 한강 일대로 영토를 넓혔어요.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남진정책'을 내세웠어요. 남진정책은 북쪽에 있던 중국 및 유목 민족들과 친선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정책이었지요.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길 정도로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강대국 고구려의 공격이 더 거세지자 백제와 신라는 나라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되었어요. 결국 433년 백제의 20대 왕 비유왕과 신라 19대 왕 눌지왕은 서로 힘을 합쳐 고구려의 침략을 막는 군사동맹을 맺었어요. 이것이 바로 나제동맹입니다.

나제동맹이 처음부터 힘을 발휘한 건 아니었어요. 장수왕은 신라를 공격해 죽령 북쪽의 땅(현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부근)을 차지했고, 475년에는 백제의 한성을 함락해 한강 유역을 완전히 고구려 영토로 만들었습니다. 한성이 함락될 때 백제 개로왕이 전사하기도 했고요.

그러자 신라와 백제는 결혼을 통해 나제동맹을 강화했어요. 493년 백제 동성왕이 신라 왕족의 딸과 결혼하면서 두 나라가 사돈지간이 된 것이죠. 이듬해 신라 군대가 고구려 군대에 패해 견아성(오늘날 경북 문경)에 포위되자 동성왕은 구원군 3000명을 보내 신라 군대를 구해주었습니다. 495년에는 고구려 군대가 백제의 치양성을 포위하자 신라 군대가 출격해 고구려 군대를 몰아냈고요. 나제동맹이 결혼동맹으로 발전하며 힘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나제동맹은 100년 넘게 신라와 백제가 나라를 지키고 국력을 기르는 방파제 역할을 했어요. 551년에는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이 힘을 합쳐 한강 유역을 고구려로부터 빼앗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제동맹이 고구려를 겨냥한 공격 동맹으로 발전한 것이죠.

하지만 얼마 뒤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을 독차지하면서 나제동맹은 단번에 깨졌어요. 신라가 나제동맹을 깨트린 이유는 '이제 우리 국력만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고 영토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요. 진흥왕이 나제동맹을 파기하고 한강 유역을 독차지하면서 신라는 국력을 더 키울 수 있었고, 훗날 삼국 통일을 이루는 기틀도 이때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동맹은 필요에 따라 100년 넘게 유지되다가도 하루아침에 깨지기도 했어요.

◇나당연합에 맞선 여제동맹은 가짜?

"폐하,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신라와 싸우면 고구려는 당나라를 공격하고, 고구려와 당나라가 싸우면 백제가 신라를 공격해 서로 돕기로 했답니다."

648년, 신라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었다"고 알렸어요.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당나라에 여제동맹이 맺어졌음을 알리며 도움을 청한 거예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사신의 말에 따르면 642년 고구려의 실권자였던 연개소문과 백제의 의자왕이 동맹을 맺었어요.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나날이 힘이 커지는 당나라와 한강 유역을 차지해 세력을 키운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죠. 이 소식을 들은 당나라는 여제동맹에 맞서기 위해 신라와 힘을 합치는 나당연합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여제동맹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어요. 여제동맹이 존재했다는 건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 사신의 말에 근거한 것인데, 신라 사신이 당나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그 근거로 김춘추(훗날 신라 태종무열왕)가 고구려에 지원군을 요청한 사실을 들어요. 삼국사기에는 '642년 8월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할 때 김춘추의 딸과 그 남편이 죽자 김춘추가 직접 고구려를 찾아가 백제를 공격할 군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만약 신라 사신의 말대로 여제동맹이 존재했다면 김춘추가 백제 편인 고구려에 찾아가 지원군을 요청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기획·구성=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