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임금님들]
계모 구박에도 원망 않고 효도… 아버지 중종 병들자 밤새 병시중
정조 "효심 부족하다" 자책하며 솔잎 갉아먹는 송충이 삼켜
문종, 눈병 걸린 아버지 세종 위해 전복 직접 손질해 드렸어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기리는 날이지요. 근래 산업화·도시화로 대가족이 줄고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효도와 경로사상이 점점 약해지고 있대요. 어버이날을 맞아 효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시다.
우리 조상 중에는 많은 이에게 큰 감동을 준 효자·효녀가 참 많았어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나라의 최고 통치자이자 권력자였던 임금님들이 효를 실천해 신하와 백성에게 감동을 주었던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해요.
◇"인종은 하늘이 낸 효자"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맏아들 이호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를 여의었어요. 이후 계모인 문정왕후 윤씨 밑에서 자랐고, 문정왕후도 세자 이호를 잘 보살폈습니다.
▲ /그림=정서용
그런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은 뒤로는 세자인 이호를 미워하고 심하게 구박하였어요. 심지어 세자가 머무는 동궁에 불을 질러 이호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호는 문정왕후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친어머니 대하듯 지극한 효심을 보였어요. 자신과 나이 차가 많은 이복동생 경원대군과도 사이좋게 지냈고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호에 관해 '성품이 매우 고요하고 욕심이 적으며, 인자하고 공손했다.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학문에 부지런하고 실천이 독실하니 동궁에 있는 25년 동안 그의 어진 덕이 널리 알려졌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이호는 아버지 중종에게도 효심을 다했습니다. 중종이 깊은 병에 들자 잠을 편히 자지 못할 정도로 병시중을 들고 아버지가 먹는 약은 반드시 먼저 맛을 보아 이상이 없는지 살폈어요. 중종이 쾌차하길 기원하며 한겨울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늘에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중종이 결국 숨을 거두자 이호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엿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다섯 달 동안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다고 해요.
중종의 뒤를 이어 인종이 된 후에도 그의 효심은 변함이 없었어요. 한번은 인종이 조선을 찾은 명나라 사신과 중종이 거처하던 곳을 지나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어요. 명나라 사신이 인종이 눈물을 흘린 이유와 인종의 효심을 전해 듣고서는 "하늘이 낸 효자"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전복을 손수 손질한 문종
조선 5대 임금 문종도 효심이 깊은 임금이었어요. 아버지 세종이 당뇨병과 관절통, 눈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문안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아바마마, 눈병에 전복이 좋다고 하여 소자가 직접 전복을 다듬어 왔습니다. 맛을 보시옵소서."
과거에는 전복 양식이 되지 않아 전복이 아주 귀한 음식이었지요. 전복이 눈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문종이 아버지를 위해 전복을 손수 손질해 가져온 것이었죠. 문종은 병든 세종의 몸을 일으켜 전복을 맛보게 한 뒤 눈물을 흘렸고, 아들의 효심에 감동한 세종도 기쁜 마음으로 전복을 먹었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효심 깊은 인종과 문종 모두 이른 나이에 죽고 말았어요. 원체 병약했던 문종은 세종이 숨을 거두자 아버지의 죽음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큰 병을 얻었고, 왕이 된 지 2년 뒤에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인종도 아버지 중종의 병시중을 들고 죽음을 슬퍼하다 건강이 나빠져 왕위에 오른 지 약 9개월 만에 숨을 거두었어요. 조선 역대 임금 중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았지요. 경기 고양시에는 인종의 무덤이 있는데, 그 이름이 효릉(孝陵)입니다. 인종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무덤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죠.
◇정조가 송충이를 집어삼킨 사연
조선 22대 임금 정조도 지극한 효자였어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을 자주 찾아가 참배하였어요. 아버지를 위해 융릉 주변을 푸른 숲으로 가꾸려 나무를 많이 심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초여름 날이었어요. 정조가 융릉을 찾아 참배를 마치고 나왔는데, 융릉 주변에 심은 소나무들의 잎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어요. 정조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신하들은 "숲에 송충이가 생겨 솔잎을 모두 갉아먹어 그렇다"며 "숲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로 벌을 내려달라"고 아뢨어요. 그러자 정조는 "어찌 그것이 경들의 죄인가. 효성이 부족한 과인의 부덕 때문"이라고 말하며 소나무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곤 소나무 위를 기던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산 채로 집어삼켰어요.
"아버님이 잠드신 곳의 소나무를 갉아먹을 바에야 차라리 불효한 내 창자를 갉아먹어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일이 있고 난 뒤 융릉으로 새들이 몰려와 소나무 잎을 갉아먹던 송충이를 모두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융릉 주변 숲은 다시 울창해졌지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송충이를 산 채로 삼킨 정조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기획·구성=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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