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보물]
정약용 아내 치마 오려서 쓴 서첩, 6·25 때 잃어버렸다 2004년 발견
中서 사라진 원나라 법전 '지정조격', 2003년 경주 양동마을에서 나타나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던 보물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 중이에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는 10월 31일까지 '쓰레기 사용설명서'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쓰레기 수집이나 활용과 관련된 유물 및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고,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재활용 놀이터,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다른 장난감으로 교환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어요. 전시물 중에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다가 지정문화재가 된 역사적 보물들이죠. '하피첩(보물 1683-2호)''영조 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보물 1901-11호)''미인도(고산 윤선도유물전시관 소장)' 등이에요. 이 보물들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어쩌다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을까요?
◇폐지 수레에서 발견된 '하피첩'
1800년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 사건에 휘말려 장장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되죠. 귀양살이 10년째 되던 해 부인 홍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집올 때 혼례복으로 가져온 붉은 치마를 유배지로 보냈어요. 정약용은 그 치마를 여러 폭으로 마름질해 조그마한 서첩 네 개를 만들었죠. 서첩에는 당시 18세, 15세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당부해두고 싶은 말을 써넣었죠.
"병든 아내가 치마를 보내 천리 밖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쳤는데 오랜 세월에 붉은색이 이미 바랜 것을 보니, 서글퍼 노쇠했다는 생각이 들어 처량하구나. 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그나마 아들들을 타이르는 글귀를 쓰니,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며 평생 가슴속에 새기기를 바라노라."
▲ 그림=정서용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보낸 그 서첩을 '노을 빛(노을 하·霞) 치마(치마 피·帔)로 만든 문서(문서 첩·帖)'라는 뜻의 '하피첩'이라 이름 지었어요. 하피첩을 만들고 남은 천도 헛되이 쓰지 않았어요. 하얀 꽃망울 가득한 매화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정겹게 앉아 있는 그림에 시를 적어 넣고 곧 시집갈 스물한 살 딸에게 보냈죠. 자식들을 향한 정약용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하피첩은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했는데 6·25전쟁 통에 정약용의 종손이 수원역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2004년 수원의 폐지 수레에 실려 있던 것을 한 남자가 발견해 보관하다가 2006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감정을 의뢰했어요. 그 책이 '하피첩'이라는 것을 알아본 감정위원들은 감정가 1억원을 매겼죠. 2015년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잘 보관하고 있어요.
◇라면 상자 안에 있던 몽골의 보물
쓰레기 뭉치에서 우리나라의 보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적도 있었어요. 2003년 경주의 양동마을에서는 현재 세계에 하나뿐인 원나라의 법전이 라면 상자에서 발견됐죠. 그 사연은 이래요. 1994년 경주 손씨 종손 손동만은 집안의 책자와 문서를 정리하면서 너덜너덜한 대나무 종이로 된 중국 책을 보게 됐어요. 손동만은 그 책을 쓸모없는 물건이라 여겨 나중에 버릴 생각으로 라면 상자에 넣어 창고 한편에 두었어요. 손동만이 1996년에 세상을 떠나자 아들 손성훈이 대를 이어 집안의 문헌을 관리했어요.
종가 건물이 보물로 지정된 후 어느 날 문화재청에서 건물을 수리하러 왔어요. 손성훈은 아버지가 치워뒀던 라면 상자를 버리려 했죠. 그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안승준 연구원이 나섰어요. 장서각에 가져다가 살펴본 뒤 정 쓸모없는 것이라면 버리겠다고 했죠. 몇 달이 지난 뒤 안 연구원은 라면 상자 안을 정리하다가 '지정조격(至正條格)'이라는 원나라의 법률 서적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지정조격은 1271~1368년 사이 중국을 지배했던 몽골 왕조 때의 법전이에요. 원나라 제15대 황제인 순제 지정(순제 때의 연호) 6년(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에 완성됐어요. 중국에서도 사라진 지정조격이 한국에서 발견되자 전 세계 학계가 흥분했죠. 지정조격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 법전이에요. 고려 때는 형사법의 바탕이 됐고 조선 초기에는 중국 제도를 연구하는 중요 자료로 활용됐으며 역관 시험의 주요 과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어요. 하마터면 몽골이나 중국,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질 뻔했어요. 2010년 3월에는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을 비롯한 몽골 방문단이 이 법전을 직접 보러 우리나라를 찾았어요.
☞영조 대왕 의궤와 미인도
‘영조 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는 조선 21대 왕 영조의 태(胎·탯줄)를 보관하는 곳을 만드는 과정과 의례 등을 기록한 책이에요.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의 무병장수를 위해 탯줄을 보관했는데,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죠. 이 책은 태실을 관리하던 사람 후손의 집 다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됐어요. 발견한 사람이 청원군청에 기증했는데 처음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군청 직원의 노력으로 2016년 보물 제1901-11호로 지정되었어요.
‘미인도’는 조선 중기 화가 윤용(1708~1740)이 그린 것으로 짐작돼요. 이 그림은 해남 윤씨 집안의 창고 안에서 오래된 유물들 틈에 있다가 1982년에야 발견됐죠. 1989년 도난당해 일본으로 밀반출될 뻔한 위기도 넘겼어요. 신윤복의 미인도와 함께 조선의 여인을 그린 걸작으로 손꼽혀요.
지호진·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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