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영조 총애받은 조선 화가… 금강산 여행 후 화폭에 담아

bindol 2021. 11. 9. 04:27

[겸재 정선]
35세에 스승·벗과 금강산 유람… 직접 답사한 풍광 예술로 표현했죠… 임금에게 종2품 벼슬 받았어요
최근 정선 작품 7점 새로 발견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대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이 그린 금강산 그림 7점이 최근 발견돼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어요. 진경산수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그림이죠. 7점 모두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어요. 각각 그림 왼쪽 또는 오른쪽 윗부분에 '비로봉' '비홍교' '마하연' '정양사' '보덕굴' '구룡폭' '단발령' 같은 그림 제목과 '겸재초(謙齋草)'라는 화가의 서명이 적혀 있어요.

겸재는 정선의 호, 즉 다른 사람들이 본명 대신 즐겨 부르던 이름이에요. 정선은 그림 실력이 너무 뛰어나 당시 화가로서는 오르기 어려운 종2품 벼슬을 임금에게서 받기도 했죠. 정선은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의 그림이 얼마나 뛰어났기에 임금으로부터 그렇게 큰 총애를 받았을까요?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다

정선을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는 이유는 그가 조선시대에 진경산수화를 개척하고 완성했기 때문이에요. 정선 작품 중 '금강전도'는 금강산 풍경을 그린 그림이에요. 일만 이천봉 봉우리들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을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독특한 구도로 그려냈지요.

 /그림=정서용

정선은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요? 금강산을 수차례 꼼꼼하게 둘러봤다고 해요. 조선 초기 화가들은 주로 중국 산수화를 본떠서 가본 적도 없는 풍경을 그렸는데, 정선은 달랐어요. 우리 강산을 직접 답사한 뒤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옮겼어요. 상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눈에 본 모습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진짜 경치를 그린 산수화'라는 뜻에서 '진경산수화'라고 부른 거죠.

처음엔 정선도 다른 화가들처럼 중국 산수화를 따라 그렸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강산 곳곳을 여행하며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우리 강산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굳이 중국 산수화를 따라 그릴 필요가 있을까?'

◇스승·벗과 함께 금강산 유람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정선은 1676년 한양 북악산 서남쪽 기슭에서 양반집 맏아들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14세에 아버지를 여읜 데다 집도 몹시 가난했어요. 이웃에 살던 명문 안동 김씨 가족이 그런 정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줬어요. 안동 김씨 집안의 김창집·창협·창흡·창업·창연·창립 6형제가 특히 큰 도움을 줬지요. 이 중 셋째인 김창흡(1653~1722)이 정선의 스승이 되어 성리학과 시, 문장을 가르쳐줬어요. 워낙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었던 정선은 이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관직에도 오르고 선비 화가로 이름도 알렸어요.

정선은 35세가 되던 1711년 스승 김창흡과 함께 처음 금강산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이듬해엔 강원도 금화 현감으로 있던 이병연(1671~1751)이 김창흡과 정선 등을 초청해 함께 금강산을 유람했지요. 이병연 역시 김창흡의 제자로 정선과는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친한 선배였어요. 이때 정선이 그린 그림들을 이병연이 주변에 소개하면서 그의 예술이 널리 알려졌어요. 이후 정선은 조선 최고 화가로 주목받게 됩니다.

스승 김창흡도 정선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어요. 김창흡이 정선 그림에 시를 써주기도 했는데, 당시 문인들은 정선 그림에 김창흡 시를 덧붙인 작품을 최고로 쳤어요.

◇영조 임금의 총애를 받다

스승 김창흡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선배 이병연이 정선 그림에 시를 써넣어줬어요. 이병연은 영조 시대 제1의 시인이었어요. 김창흡이 살아 있을 땐 "세상에서 그림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정선의 그림에 김창흡의 시를 맞춘다"는 말이 돌았고, 김창흡이 떠난 뒤엔 "시는 이병연, 그림은 정선"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하네요.

1740년 정선이 64세 나이로 경기 양천현령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이병연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지내게 됐어요. 양천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를 가리키는데 그때는 아직 경기도의 한 고을이었어요. 둘은 '이병연이 시를 보내면 정선이 그림으로 화답하자'는 약속을 했어요. 두 사람이 편지처럼 주고받은 시와 그림을 모은 것이 '경교명승첩'이에요. 서울 근교와 한강을 그렸지요.

정선은 화가로서 영조 임금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기도 했어요. 정선이 여러 관직을 지내고 화가로서 최고 벼슬인 종2품의 동지중추부사까지 오른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요. 영조는 정선이 57세이던 1733년 그를 경상도 청하현감으로 발령했어요. 앞서 말했듯 64세엔 양천현령으로 발령했고요. 두 곳 모두 경치가 아름다운 고장이죠. 정선이 경치 좋은 고장에 머물며 멋진 그림을 그리도록 영조가 배려한 건 아닐까요? 물론 정선은 두 고장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훌륭한 작품을 남겼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