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공동 부유’ 뒷모습엔… 빈곤층 6억명, 천문학적 빈부격차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2회>
“대동 사회 건설”...중국공산당이 40년 전 폐기한 선전 문구
“억강부약(抑强扶弱)의 대동(大同) 사회 건설!”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부축해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잘사는 이상사회를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최근 “단군 이래 최대 토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채 대한민국 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바로 그 정치인이 내건 당돌한 슬로건이다.
일면 멋진 공약 같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착오와 도행역시(倒行逆施, 거꾸로 가고 거슬러 일을 하는)의 낡고 진부한 구호임이 대번에 드러난다. 중국공산당조차 40년 전에 폐기했던 냉전 시대 공산권의 판에 박힌 선전 문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대동 사회”를 추구하던 1950-60년대 중국 경제는 바닥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대기근의 참상과 문화혁명의 광기를 겪고 나서야 중국공산당은 “대동 사회”의 몽상을 버리고 “소강(小康, 시아오캉) 사회”의 실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유토피아의 몽상이 디스토피아로 귀결되고, 낡은 리더십의 교체가 번영을 몰고 오는 단적인 사례다.
완전고용, 완전복지, 인간해방?...실패한 “대동 사회” 실험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제시된 “대동”은 대도(大道)가 행해지던 상고 시대 요순(堯舜) 통치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발탁돼 좋은 통치가 이뤄지고, 가족 구분도 없이 모두가 서로 돕고 아끼며, 홀아비, 과부, 고아, 노인도 보살핌을 받고, 도둑도. 불량배도 하나 없이 모두가 다 같이 함께 세상을 누리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완전 고용, 완전 복지, 인간 해방, 인격 완성의 아름다운 유토피아의 세계다.
청일전쟁(1894-1895) 후, 중국의 지식인들은 무너지는 중화문명의 회복을 위해 유교(儒敎)의 이상향 “대동 사회”의 건설을 꿈꿨다. 청말 광서(光緖, 재위 1875-1908) 황제의 지원 아래서 103일간 무술변법(戊戌變法, 1898)을 이끌었던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는 평생에 걸쳐 유토피아의 이상을 담은 <<대동서(大同書)>>를 집필했다.
1958-59년 대약진(大躍進)의 구호 아래 전국에 인민공사(人民公社)를 건립할 당시, 마오쩌둥은 <<대동서>>의 유토피아가 바로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이 건립하려 하는 이상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대동의 꿈은 대약진 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3천만-4천5백만 명이 아사하는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을 초래했다. 대기근 발생 후 잠시 주춤했던 대동의 꿈은 다시금 문화대혁명(1966-1976) 10년 동안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대중 반란, 권력투쟁, 계급투쟁, 집단학살, 무장 충돌로 표출됐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그 누구도 “대동 사회”를 섣불리 외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1950-60년대 급진 마오주의 정책의 처참한 후폭풍을 직접 겪고 자랐으며, 개혁개방 이후 40년 간 중국공산당은 일관되게 대동의 몽상을 폐기하고 소강 사회의 실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주창한 예의 지키고 질서 유지되는 “소강 사회”는 실현됐는가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2년 후 덩샤오핑이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후에야 중국공산당은 “대동 사회”의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79년 12월 덩샤오핑은 농업, 산업, 국방, 과학·기술 분야의 “4대 현대화”를 통한 이른바 “소강 사회”의 달성을 현실적인 목표로 제시했다.
작은 평화를 의미하는 “소강”도 <<예기>><예운>편에 전거를 두고 있다. 대도가 이미 숨어버린 후, 사람들이 스스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돌보는 “천하위가(天下爲家)”의 세상이다. 요순의 통치처럼 완전하진 않지만, 소강 또한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 주공(周公) 등 삼대(三代)의 성왕(聖王)들이 다스렸던 작은 이상 사회를 의미한다. 예의가 지켜지고, 질서가 유지되고, 형벌이 바로 선, 완벽하진 않아도 꽤 살기 좋은 세상이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예기>>의 원문을 보면 소강의 세상에선 독재자가 출현하면 인민이 그를 재앙의 원흉이라 여겨 축출했다고도 적혀 있다.
1990년대 들어와 장쩌민은 다시금 “소강 사회”를 중국 경제 발전의 현실적 목적으로 제시했다. 이후 2002-2012년 후진타오 집권기 10년 동안 “소강 사회”는 중국 사회의 중장기 목표로 더욱 강조됐다. “중국몽”을 외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공산당의 초심이라 강조하는 강력한 권력 의지의 시진핑도 감히 “대동 사회”를 언급하지 않는다. 2015년 시진핑은 “4대 전면 전략 구상”을 발표했는데, 제1조항이 바로 “소강 사회의 전면 건설”이었다. “소강 사회”의 달성이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가장 큰 목표로 설정돼 있는 셈이다.
1인당 GDP 미국의 23%...6억명이 월수입 140달러 이하 빈곤층
현재 중국의 총생산량은 세계 2위를 자랑하지만 규모의 경제는 중국의 평범한 인민이 겪는 경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미국보다 4.35배 인구가 많은 중국의 GDP가 미국과 같아진다면, 1인당 GDP는 미국의 23%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25일 국무원 총리 리커창은 중국 인구의 40%에 달하는 6억 명이 월수입 1000위안(미화 140 달러) 이하의 빈곤 상태를 탈출하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2020년 2월 시진핑이 중국에선 절대 빈곤층(월 소득 미화 28불 이하)이 완전 소멸됐다고 선언한지 불과 석 달 만에 터져 나온 당내의 돌출 발언이었다.
중국 안팎에선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뒤따랐지만, 오히려 중공지도부의 잘 조율된 이중 메시지란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개혁개방의 큰 성과를 선전하는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이슈화함으로써 중공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포석이다. 40여년 마구 달려 온 결과 2020년 중국의 1인당 GNP는 미화 1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도농, 지역, 계층 간 소득격차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현재 중국의 지니계수는 미국(0.41)보다 더 높은 0.47에 달한다. 중국 상위 1%의 재산 규모는 하위 50%보다 더 크다. 도시 3만 호 가정을 조사한 결과, 상위 20%가 전체 재산의 63%를 차지하고, 하위 20%는 고작 2.6% 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전체 중국에서 상위 20%의 소득은 하위 20%의 10.2배에 달한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층의 패배 의식을 부추긴다. 가난한 중국인들은 흔히 자조적으로 “돈이 있으면 귀신을 불러서 맷돌을 갈게 할 수도 있다(有錢能使鬼推磨)”는 속담을 내뱉곤 한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레닌주의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배금주의의 나라가 돼버린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
상위 20%, 전체 재산의 63% 차지...이율배반 “공동부유(共同富裕)” 구호
중국공산당 총서기,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시진핑은 중앙재경 위원회 주임이기도 하다. 2021년 8월 17일 시진핑은 중앙재경위 제 1차 회의에서 공동부유의 촉진 방안을 토의했다. 그는 “공동 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공동 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부유”의 저작권은 마오쩌둥에 있다. 1955년 마오쩌둥은 “농업 합작화 문제에 관하여”에서 부농(富農) 중심의 개체 경제를 전면 폐기해서 농촌 인민이 ‘공동 부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이 ‘공동 부유’를 국정의 핵심 의제로 제시하자 중국 안팎이 술렁였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철통 권력을 유지해 온 시진핑 정권은 여러 모로 마오쩌둥 시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일단 2021년 8월 17일 중앙재경위 회의록을 보면 시진핑의 “공동 부유”가 마오쩌둥처럼 사유 재산을 철폐하는 과격한 사회주의 이상의 선포는 아님이 확실해 보인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은 번영을 희구하는 “치부광영(致富光榮)”의 구호와 효율적 발전을 위해 개인적·지역적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하는 “선부론(先富論)”을 들고 나왔다. 2002년 이래 중국공산당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공유제 경제 발전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고,” 동시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비공유제 경제 발전을 북돋우고 지지하고 인도해야 한다”는 이른바 “한 치도 동요 않는 두 가지(兩個毫不動搖)”를 중국 경제의 기본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시진핑의 “공동 부유” 역시 그 두 가지 원칙을 벗어나진 않는다. 시진핑의 표현을 빌면, “공동부유는 소수의 부유가 아니지만, 획일적 평균주의도 아니다.” “공유제를 주체로 삼는 다양한 소유 경제의 공동 발전을 견지하고, 일부의 사람들이 먼저 부를 일군 후, 선부(先富)가 후부(後富)를 이끌고 도와주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얘기다.
중공 정부의 정치 구호는 “민주독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처럼 상호 모순되는 이율배반의 두 원칙을 억지로 합쳐 놓은 경우가 흔하다. “공유제 경제”와 “비공유제 경제”를 둘 다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견지한다는 중국공산당의 선언은 자가당착처럼 보인다. 논리적 모순이지만, 중국공산당으로선 필요에 따라 어느 쪽이든 벨 수 있는 양날의 칼을 쥐고 있는 셈이다.
중 정부, 언제든 민간기업 해체할 수 있어...’대동사회’ 말하진 않아
중공 정부는 “공유제 경제”를 전면에 내세워 언제든지 민간 기업을 압박하고 통제하고, 심지어 해체할 수도 있다. 최근 중공 정부는 날로 덩치가 커져가는 대표적인 민간 기업의 총수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특히 기업의 총수가 정부를 비판하는 언행을 보일 경우 정치 보복을 피하지 못한다.
2020년 11월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1964- )은 기업의 창의성을 해치는 관료 행정의 불합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갖은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2021년 5월 3일 메이투완(美團)의 총수 왕싱(王興, 1979- )은 SNS에서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비판하는 당시(唐詩) 한 수를 공유해 시진핑의 정치적 탄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바로 그날 메이투완의 주가는 7.1%나 폭락하는 후폭풍이 몰아쳤다. 그밖에도 바이트댄스(ByteDance)의 장이밍(張一鳴, 1983- ), 핀둬둬(Pinduoduo)의 황정(黃崢, 1980- ),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1971- ) 등도 경영권을 박탈당하거나 공적 매체에서 자취를 감췄다.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다시금 “공동 부유”를 꺼내든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표면상 1000위안 이하의 월수입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6억 명의 가난한 인민의 구제를 궁극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날로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민간 기업을 견제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민주독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이율배반의 모순 개념이야 말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를 가능케 하는 예리한 이념적 무기다. 그러한 중국공산당도 “억강부약의 대동 사회 건설” 같은 유토피아의 몽상을 정치 구호로 꺼내들지 않는다. 과대망상의 정치구호는 스스로 권력 기반을 허무는 자승자박의 올가미란 사실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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